1950년 9월 28일 일기 외 2편
이보숙
대포 소리 멈추자 대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몇 달만인가
공동우물 옆집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청마루에 한 팔을 얹은 채
땅바닥에 앉아 죽어 있는 여인
그녀의 흰 상복 옆구리로 흘러내린 붉은 핏자국
필시, 그녀는 지난 밤 마구 퍼붓던 대포 소리에 놀라
혼자 있던 방문을 뛰쳐나왔을 것,
B29가 원효로에 큰 독만 한 폭탄들을 쏟아 붓던 날
남편의 얼굴이 날아갔다더니
입고 있던 바지와 손목시계를 보고
시신을 수습해 왔다더니···
얻어다 기르던 아이마저 영양실조로 잃었다더니,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모두 초월자가 된 듯 말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거지가 되어
모두들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그 날 저녁, 인왕산에는 북한군이
남산에는 연합군이 콩 볶듯
서로의 머리를 부서져라 총탄을 퍼부을 때
시뻘건 불의 소나기를 피해보려고
우리들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엎디어 있거나
게처럼 기어 다녔다
9월 28일 낮,
인왕산 부서진 성터 위로 찦차 한 대 올라가더니
얼굴 검은 병사 하나가 태극기를 꽂았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은
구월 산야에 핀 구절초 꽃빛 마냥
새파랗게 질려 있기만 했다.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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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어머니
골고다만큼 높은 산을 향하여
지친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내리던 어머니
새벽부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어두움이 깔려 있는 산동네를
하루도 마다않고 오르내리던 당신
어린 내가 대신할 수 없었던 삶의 길,
가난한 울타리를 지키려 일의 노예가 되었고
자식의 어깨가 처질까 다독거리던 손,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어여삐 단장할 여유도 없던
가장 아름다운 꽃
십자가, 뿌리칠 수 없었던 한 송이 백합,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았고
세상의 강물도 피해갈 수 있었다
학식은 짧고 금과 은 없었지만
자식에게 남기신 유산은 고요히 지킨 믿음
어머니의 기도하던 음성, 당신의 무거웠던 십자가,
이제 내가 걷고 있는 길.
-전문(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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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두 알
차가운 겨울 보도에서
내 발길에 걸린 노란 은행 두 알
꽁꽁 언 둘이 꼭 붙어 있다
누군가의 구둣발에 밟혀 으깨질까
길 한쪽으로 밀고 갔다
말도 못하고 마른 풀포기 곁으로 굴러가는
은행 두 알
그들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친구들 다 어디 가고 둘만 남았니
부모형제 다 어디 가고
너희 둘만 손을 꼭 잡고 있니
꽁꽁 얼은 은행 두 알
삶과 죽음, 둘 다 가지고 태어난
아주 작은 존재
어디 가더라도 흙 속에 따듯이 묻혀
푸르른 날 오면 부활하도록 하렴.
-전문(p.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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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그 역에 가고 싶다』 2022. 7. 1. <문학아카데미> 펴냄
* 이보숙/ 서울 출생, 1992년『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새들이 사는 세상』『코코넛 게』『목련나무 어린 백로』『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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