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1950년 9월 28일 일기 외 2편/ 이보숙

검지 정숙자 2022. 7. 14. 02:28

 

    1950년 9월 28일 일기 외 2편

 

    이보숙

 

 

  대포 소리 멈추자 대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몇 달만인가

  공동우물 옆집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대청마루에 한 팔을 얹은 채

  땅바닥에 앉아 죽어 있는 여인

  그녀의 흰 상복 옆구리로 흘러내린 붉은 핏자국

  필시, 그녀는 지난 밤 마구 퍼붓던 대포 소리에 놀라

  혼자 있던 방문을 뛰쳐나왔을 것,

 

  B29가 원효로에 큰 독만 한 폭탄들을 쏟아 붓던 날

  남편의 얼굴이 날아갔다더니

  입고 있던 바지와 손목시계를 보고

  시신을 수습해 왔다더니···

  얻어다 기르던 아이마저 영양실조로 잃었다더니,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모두  초월자가 된 듯 말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모른 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거지가 되어

  모두들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그 날 저녁, 인왕산에는 북한군이

  남산에는 연합군이 콩 볶듯

  서로의 머리를 부서져라 총탄을 퍼부을 때

  시뻘건 불의 소나기를 피해보려고

  우리들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엎디어 있거나

  게처럼 기어 다녔다

 

  9월 28일 낮,

  인왕산 부서진 성터 위로 찦차 한 대 올라가더니

  얼굴 검은 병사 하나가 태극기를 꽂았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은

  구월 산야에 핀 구절초 꽃빛 마냥

  새파랗게 질려 있기만 했다.

     -전문(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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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 어머니

 

 

  골고다만큼 높은 산을 향하여

  지친 발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내리던 어머니

 

  새벽부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

  어두움이 깔려 있는 산동네를

  하루도 마다않고 오르내리던 당신

  어린 내가 대신할 수 없었던 삶의 길,

 

  가난한 울타리를 지키려 일의 노예가 되었고

  자식의 어깨가 처질까 다독거리던 손,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어여삐 단장할 여유도 없던

  가장 아름다운 꽃

  십자가, 뿌리칠 수 없었던 한 송이 백합,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았고

  세상의 강물도 피해갈 수 있었다

  학식은 짧고 금과 은 없었지만

  자식에게 남기신 유산은 고요히 지킨 믿음

 

  어머니의 기도하던 음성, 당신의 무거웠던 십자가,

  이제 내가 걷고 있는 길.

     -전문(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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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두 알

 

 

  차가운 겨울 보도에서

  내 발길에 걸린 노란 은행 두 알

  꽁꽁 언 둘이 꼭 붙어 있다

 

  누군가의 구둣발에 밟혀 으깨질까

  길 한쪽으로 밀고 갔다

  말도 못하고 마른 풀포기 곁으로 굴러가는

  은행 두 알

  그들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

 

  친구들 다 어디 가고 둘만 남았니

  부모형제 다 어디 가고

  너희 둘만 손을 꼭 잡고 있니

 

  꽁꽁 얼은 은행 두 알

  삶과 죽음, 둘 다 가지고 태어난

  아주 작은 존재

  

  어디 가더라도 흙 속에 따듯이 묻혀

  푸르른 날 오면 부활하도록 하렴.

      -전문(p.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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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그 역에 가고 싶다』 2022. 7. 1. <문학아카데미> 펴냄

   * 이보숙/ 서울 출생, 1992년『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새들이 사는 세상』『코코넛 게』『목련나무 어린 백로』『훈데르트 바서의  물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