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서정주 시인의 댕기 놀이/ 박제천

검지 정숙자 2010. 10. 25. 00:16

 

   서정주 시인의 댕기 놀이


     박제천



   그날 시인은 버스에 타서 앞자리의 여학생 댕기머리가 너무 예뻐서 제비부리댕기가 너무 예뻐서 그냥 그걸 만지작거렸네 지금 같으면 버스가 급정거를 하고 경찰에게 성희롱 조사를 받고 신문에도 나서 뭘 먹고 살지도 몰라 한강교나 왔다갔다 했겠지만 다행히도 흰 무명옷 갈아입으면 샤를르 보들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여자도 잊어버리는 1960년대라서 별일이 있을 리 없었다네 그런 어느 날 밤 문득 그 댕기가 머리 속에 비취의 별빛 불들을 켜기에 그걸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도 비끼어가는 님의 눈썹이 되었다네 천년만년 누구나 그 눈썹 아래 반짝이는 제 님의 눈을 찾아낼 수 있게 해주셨다네 

 

                                                                                                                         *『碧巖錄』77則「雲門鯿餠」



  *시집『달마나무』에서/ 2010.10.1<문학아카데미>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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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천/ 서울 출생, 1965~66년『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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