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햇살/ 김중일

검지 정숙자 2022. 7. 1. 03:08

<2022, 제23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수상작> 中

 

    햇살

 

    김중일

 

 

  이곳에 드리워진 암막 같은 밤이 걷히면 햇살이 이곳을 구석구석 만진다. 해변이 훤히 보이는 소공원. 소나무가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고 나무 사이 여기저기 해먹이 걸려 있는 곳.

 

  너는 매일 수평선에 두 번 절한다. 너는 자신이 속한 시간에 대해서 내게 말하지 않는다. 대체 너는 어느 시간에 있냐고 물어도, 순전한 농담으로 듣고 웃고 만다.

 

  얼마 전에 , 한밤에, 암막 뒤편에 도둑이 들어 잠든 내 가슴뼈를 열어 귀중품들을 발굴해 갔다는데, 그 일이 신기한 경험이었던 이유는 남아 있는 귀중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빈 가슴을 몰래 한 번 열어보니 무엇이 귀중해 보이나 물으니, 뼈는 몸안으로 파고 들어간 굳은살이라고 말한다. 그 알쏭달쏭하고 순순한 대답을 꼬투리 삼아. 그 도둑이 정말 너였냐고 되묻는다.

 

  너는 막 수평선을 향한 두 번의 절을 마치고, 대답 없이 바다에 제물처럼 몸을 던진다. 아침 해가 솟고 수평선이 봉분처럼 부풀어 오른다.

 

  해수욕을 마치고 나온 너는 차가워진 온몸으로 따뜻하고 보드라운 햇살을 만진다. 해변의 백사장이, 알몸의 아이들이, 늙은 나무들이, 주인 없는 파라솔과 해먹들까지도, 나 역시 거부하지 못하고 햇살을 쓰다듬는다. 기억 속에만 여태 사는 죽은 사람의 따뜻했던 체온의 살갗을 만지듯 시간을 잠시 멈춰놓고 가만히 쓰다듬는다.

 

  눈을 감고, 햇살은 왜 이렇게 따뜻하고 보드라울까 은연중에 물으니, 웬일로 너는 단호히 답한다. 몸이 없잖아. 죽어서 차갑게 체온을 끌고 내려갈 몸이 없잖아. 오직 기억의 성분으로만 이루어져 있잖아. 햇살이라는 살갗은.

 

  햇살을, 만지며 이곳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 우리처럼 무럭무럭 늙어간다.

     -전문-

 

    * 심사평:  오형엽  김언  조강석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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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5월(389)호 <제23회 현대시작품상 특집/ 수상작> 에서

   * 김중일/ 2002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국경꽃집』『아무튼 씨 미안해요』『내가 살아갈 사람』『가슴에서 사슴까지』『유령시인』『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