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寧王의 木棺
문효치
그렇지, 님을 실어 저승으로 저어가던 한 隻의 배가 세월의 골 깊은 앙금에 익어 지금 여기에 머무르다. 이별을 서러워하던 血肉의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쉬임없이 들려오는 蒼生의 울음소리, 짭짜름한 저승의 바람 냄새가 잡혀 와, 그렇지, 우리가 또 빈손으로 타고서 아스름한 바다를 가르며 저어가야 될 한 隻의 배가 여기에 왔지.
전문, 첫 시집 『연기 속에 서서』(1976)
▶ 문효치의 시적 여정 고찰(발췌) _김미연/ 시인, 문학평론가, 진주교대 강사
문효치 시인은 1962년에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65년에 동대문학회東大文學會를 창립하여 회장으로 활동하고, 1966년에는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고, 대학을 졸업한다. 재학 중 ROTC에 입단하여 군사교육을 받았으나, 아버지의 월북이 문제가 되어 장교 임관에서 탈락되고, 하사로 입대하여 동기생 소대장들이 있는 전방부대에서 분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제대할 때까지 군 수사기관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1968년에 제대하고, 2학기부터 군산동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 1970년에 서울의 배재중학교로 직장을 옮긴다. 제대 후에도 경찰과 군 수사기관의 조사와 감시가 계속되었다. 이에 의한 억압심리가 누적되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소화불량, 불면증, 부정맥 등에 시달리며 체중이 34㎏까지 내려가고, 십 수 년간 이 체중이 지속되면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죽음 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삶을 시인은 "되돌아보면 내 삶은 험난한 터널의 연속이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1971년에 공주에서 무령왕릉武寧王陵이 발견되고, 서울에서 그 유물전시회가 열려 문효치 시인이 관람한다. 이를 계기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결부한 시를 창작하기 시작한다. 이상의 약전은 역사적 사건에 의해 고난을 겪은 문효치의 '사회적 죽음'과 시적 부활의 여정이다.
문효치의 문단경력은 2001년에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2005년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2015년에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에 당선되는 등 문단활동을 많이 한 시인이다. 그는 창작활동과 문단활동을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활발한 문효치의 문학 활동은, 그에게서 결핍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보상심리의 발로가 아닐까 추측된다. 6·25라는 전쟁은 그에게서 하늘인 아버지와 곧 희망을 뺏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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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는 ‘木棺’을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한 隻의 배’라고 명명하고, "이 배에 탈 승객이 나는 아닐까."라고 한다. 그러다가 "나는 죽음의 두려움을 덜기 위해 죽음을 인정하고 수용해버리는 역설적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후 문효치는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그의 건강 회복은 온전히 백제 유물과의 만남에서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제 유물에 대한 그의 페티시즘(呪物崇拜-Fetishism)도 그의 생명탐구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효치는 "내가 백제 관련 시 백 수십 편을 쓰면서 제일 많이 생각해 본 것은 삶과 죽음의 합일화를 시로 승화시켜보자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지, 우리가 빈손으로 타고서 아스름한 바다를 가르며 저어가야 될 한 隻의 배가 여기에 왔지.“라고 시를 마무리한다. ‘죽음의 배’인 ‘木棺’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김정남은 "여기서 무령왕의 목관이란 단지 패망한 왕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님을 실어 저승으로 저어가던 한 척의 배'이자 우리가 또한 '빈손으로 타고 아스름한 바다를 가르며 저어가야 될 한 척의 배'이다. 여기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화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의 의미다."라고 하고··· "무령왕의 목관은, 죽은 자가 요단강을 건너가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서구 기독교의 단절론이 아니라, 생과 사를 하나의 고리로 파악하는 동양적 연기론과 윤회론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작품의 "이별을 서러워하던 혈육의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채 쉬임없이 들려오는 창생蒼生의 울음소리, 짭짜름한 저승의 바람 냄새가 잡혀와,“라고 하는 이미지를 근거로 든다. 이것은 이승의 울음소리와 저승의 바람 냄새가 함께하는 곧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시적 상상력의 이미지임을 말해준다. 시인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목관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의 생명현상이라는 시적 이미지를 본 것이다. (p. 시 107 / 론 100-101 // 1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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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2-여름(86)호 <현대시인 열전 15_ 문효치 편> 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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