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핑 기차 외 1편
강다인
나는 공항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요 알고 보면
이 동네는 꽤나 흐뭇한 동네예요
비행기는 매일 보지만 여행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공룡도 팅커벨도 궁금하지 않아요
은하철도 999는 아주 익숙하답니다
나는 공항 매점에서 커피를 마셔요 여행객들은 관심 없어요
여행객은 매일 보지만 여행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외계인과 인연을 맺은 적은 없지만
자전거 탄 소년과 손가락을 맞댄 ET는 진즉에 알고 있어요
머리 위헤서 비행기가 뜰 때마다 갇힌 눈 속의 행성은
비행운을 따라 뛰어요 나의 비행은 운이 없지만
구름은 차고 맑아요
지금 나는 공항 매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행객들의
가방 속을 훔쳐요 인도의 아가씨를 훔쳐요 알프스 꽃향기를
훔쳐요 시베이라 횡단 열차를 훔쳐요
훔친 것들을 먹고 배가 부른 나는 익숙하게 노곤해져요
공항이 아니라 공황이라네요
-전문(p.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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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키타카
견뎌낸 시간을 과거라 부른다 견뎌낼 수 없는 시간은 미래라 부르기로 한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은
저 붉은 꽃무릇의 잎과 꽃의 시간
당신의 하품과 나의 눈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은 사건으로 기억하자
당신이 내게 지금, 을 정의하라면 나는 두 눈을 감겠다 반짝이는 섬광, 꺼지지 않고 버텨내는 빛의 무리를 지금이라 하겠다 그리고 두 눈 속에서 답을 찾겠다 수없이
사랑하는 남녀라 하겠다 세모로 접어둔 책의 한 페이지라 하겠다
그 밑줄 쳐진 문장이라 하겠다
도무지 읽히지 않는 문맥이라 하겠다
몸을 잃은 낱말들로 과거를 기억하고 지긋한 입술로 미래를 기록하며 달뜬 몸으로 지금을 기대하려 한다
당신이 내게 다시 지금, 을 정의하라면
나는 당신의 보폭을 닮아가는 내 보폭의 너그러움이라 하겠다 보폭과 보폭의 행간의 뜻이라 하겠다 다시 꽃무릇이 피고 지는 일을 소소하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
피었다가 지는 꽃무릇의 한 잎을 지금이라 하겠다
당신과 내가 걷는 길 위의 구름을 지금이라 하겠다
-전문(p.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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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나는 예수의 사랑스러운 모델』에서/ 2022. 6. 20. <문학의전당> 펴냄
* 강다인/ 경남 진주 출생, 2020년『발견』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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