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육식동물 외 1편/ 고미경

검지 정숙자 2022. 6. 23. 02:48

 

    육식동물 외 1편

 

    고미경

 

 

  풍선껌을 불었다

  아버지가 붕어 배를 따면

  나는 부레를 갖고 놀았다

 

  곡교천 냇물에 하얀 풍성들을 

  하나씩 놓아서 흘려보냈다

 

  나는 강아지풀을 꺾고

  아버지는 백구를 잡았다

 

  살랑거리는 꼬리털 덕분에

  목덜미가 간지러웠지만 

  나는 내기를 하듯 꾹 참았다 

 

  새파랗게 부추가 숨죽은 

  무쇠솥 안은 펄펄 끓는 

  붉은 소용돌이

 

  흘러가는 냇물을 보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빨을 쑤시고 살점의 찌꺼기까지

  말끔히 삼키고 입을 닦았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살코기의 결에서

  어떤 슬픔도 발굴할 수 없어서

 

  지퍼를 열고 닫는 일처럼

  나는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전문(p. 56-57)

 

   -----------

    전염병

 

 

  손을 내밀지 마세요 악수는 이제 사양할래요 일그러진 입술을 마스크로 가리고 눈웃음을 짓지만 악수는 사양할래요 나는 손목댕이를 집에 두고 나왔어요 그동안 손들이 참 많았죠 눈물을 흘리는 손, 뭐든 움켜잡는 손, 더듬더듬 훑는 손, 사과하는 손, 꽃을 내미는 손, 토닥토닥 위로하는 손, 이번엔 가위를 낼까 주먹을 낼까 늘 애매하고 얄궂게 굴던 손의 표정도 있었죠 손을 내밀지 마세요 어떤 꼼수도 없이 따뜻하게 내밀어도 우린 이미 망가져 버렸어요 불안한 증상이 돼 버렸어요 서로를 외면한 채 토막토막 끊어진 손들이 이 악수惡手가 신의 한 수었을까요

     -전문(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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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그 여름의 서쪽 해변』에서/ 2022. 5. 30. <현대시학사> 펴냄   

  * 고미경/ 충남 보령 출생(온양에서 성장), 199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인질』『칸트의 우산』, <비스듬히>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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