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채무 외 1편
송용구
새벽을 깨우는
성당의 종소리
스웨터를 입고
양말을 신고
구두에 발을 넣는 순간
내 몸을 덮어주는 두터운 피륙과
내 발을 감싸주는 다스운 가죽이
지금까지 지상에서 나와 함께 살아온
피조물들의 생명이었음을
잊혀진 계명처럼 가르쳐준다
동물이요 식물이라 불리던
내 형제들과 자매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었음을
지워진 약속처럼 일깨워준다
새벽의 길을 여는
성당의 종소리는
하느님의 사자使者처럼
만물에게 진 나의 채무 목록을
하루의 첫 페이지에
빼곡히 채워준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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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세입자
청평의 통나무집 창가에
수줍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키 작은 화가
은행나무
둥그레한 나뭇가지의
붓끝마다 풀리는
연노랑 물감의 향기들이
집으로 흘러오는 흙길에
따스이 물들어간다
강변 갈대들은
가을빛 산바람으로 곱게 빗질하여
내 어릴 적 외할머니 머릿결처럼 단정하다
산의 혈맥을 따라 흐르는
강물의 노래가 햇살의 길을 열고
눈부신 빛의 재킷을 입은
물살 한 자락 두 자락은
고개 숙인 버들의 발을 곱게 씻어준다
풀잎의 글씨로
통나무집의 문패를 새기고
토박이 새들에게 전입신고를 마치니
강변의 모든 갈대들
결 고운 내 자매들이
모시옷자락을 펄럭이며
산바람의 지휘에 맞추어
환영의 코러스를 선사한다
청청한 고요의 하늘 아래
새들 버들 은행 갈대 바람 물결 풀잎과
한 마을의 식구로 살아가는
새내기 세입자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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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시집 『녹색 세입자』에서/ 2022. 5. 25. <시산맥사> 펴냄
* 송용구/ 서울 출생, 199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별빛 지는 새벽 마당에 서면』『풀피리 소리보다 향기로운』『아직은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다』, 문학비평집『기후변화에 대항하는 독일시와 한국시의 기상학적 의식』『나무여, 너의 안부를 묻는다』『생태언어학의 렌즈로 바라본 현대시』『생태시와 생태사상』『독일의 생태시』『느림과 기다림의 시학』『녹색의 저항』『현대시와 생태주의』『현대시와 저항의식』『에코토피아를 향한 생명시학』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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