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빙선 외 1편
이명선
하얗게 미끄러지는 발밑으로 시리우스처럼 고요하게 빛나다 점멸하는 등이 있다
한때는 저 등燈을 자오선이라 생각했었다
겹겹의 내가 소진되어도 결빙의 기후 속에서 무사히 통과할 거라 믿었었다
심야극장을 빠져나가듯 가까운 곳에서 한 사람이 궤적을 그으며 심해어처럼 극지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밟지 않아 난반사되던 길은 무사했는지 놓고 온 말은 없었는지 누구도 물을 수 없었다
흘러가는 유빙이 심장을 원하듯 바다 위에 우리가 주석처럼 남아 있기를 원했을까
쇄빙선은 최초의 구원에서 떨어져 나온 전갈 같았다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유빙 유빙
누군가 흘러감을 말한다면 나는 하얗게 귀를 씻고 같은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죄책감만 비춰 보고 있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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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인사말처럼 자주 보며 살자 했는데
지나는 길이라서 연락을 했다 겸사겸사는 넣어 두더라도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먹고사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을 거라는 말에 빠르게 수긍하려고 이맘때 바다 날씨를 찾아보게 되고
봐도 달라질 게 없고 보고 느껴도 막상 써먹을 데가 없더라
출입문에 '잡상인은 정중히 사절'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자주 사양 앞에 정중함을 덧붙인다 정중히 거절하면 뜻이 바뀌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리가 불편하다며 너는 너의 자리를 지키러 가고
나는 맡기거나 말아 둘 수 없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른 저녁인데 바다가 보이는 창가는 빈자리가 없고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을 바다에 풀어놓았다
불씨처럼 켜진 등대 뒤로 작은 배들이 출렁일 떄 섬은 섬사람이 잘 안다는 네 말처럼
출렁였는데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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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 버릇』에서/ 2022. 6. 3. <걷는사람> 펴냄
* 이명선/ 충남 홍성 출생, 2017년『시현실』 & 201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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