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플롯 연습/ 휘민

검지 정숙자 2022. 6. 21. 02:23

 

    플롯 연습

 

    휘민

 

 

   1

  불도 켜지 않은 얼굴들이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이는 하나인데

  넷 중에 둘은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공중에 뜬 발바닥들이

  옴팍해진 마음을 서로에게 내보인다

  조금 더 무심해지라는 듯

  눈맞춤도 없이 침묵을 흔든다

 

  어떤 관계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테두리에 실금이 생긴다

  밥그릇을 먼저 비우는 사람이 가장 외로운 사람일 수 있다

 

   2

  어제보다 태양이 더 가까워졌지만 밤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입히려 하지만

  나는 번번이 감정 조절에 실패한다

  서술자를 신뢰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진다

 

  신이 창조했지만 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가 있다

  그 순간이 찾아오면 모든 것은 그냥 캐릭터에 맡겨야 할까

 

   3

  슬픔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아무래도 나는 이 의자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할 것 같다

 

   --------------

   * 『창작21』 2022-봄(56)호 <신작시> 에서

   * 휘민/ 2001 ⟪경향신문⟫ 으로 시 부문 & 2011년 ⟪한국일보⟫에 동화 당선, 시집『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생일 꽃바구니』, 동화집『할머니는 축구 선수』, 동시집『기린을 만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