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와 시인
아이칭(중국)/ 류성준 옮김
내가 젊었을 때
나에겐 환상이 있었다
인간 세상의 혼란과 불평들을 위해
산에 들어가 강도가 되려 했다네.
나는 인민을 착취하는 사람들을 강탈하고
약자를 업신여기는 악당들을 살육하고
부자를 비호하는 법률에 항거하고
죄지은 사람들과 어울리리라.
내가 치달리는 지역에
기생하는 왕도 없고
연민으로 살아가는 거지도 없다.
불합리한 모든 제도를 종식시키고
날마다 의로운 모험 속에서 드높이 노래하리라.
그러나 현실은 나의 환상을 풀어버리고
서적은 나의 건강을 해쳤다.
나는 마침내 유랑을 사랑해
자신의 불안한 영혼은
이 진부한 세상에서 방황한다.
언제부터 내가 '시인'이라 불렸을까?
생각하면 울고 싶다!
빠나스 산 위에서
죽엽도를 잃어버리고
탄식을 노래 삼아
날마다 여위어
이제, 나는 청년 곁으로 다가가
범속과 안분으로 나를 꾸미나
그러나 나는 반항하련다!
구세계는 여전히 나를 분노하게 한다.
그러나 '시인'과 '강도'는 친구.
내가 죽엽도를 잃어버릴 때
나는 이 털 빠진 붓대로
구세계의 추악한 모든 것을 찌르리.
-전문-
▶ 혁명은 심장에 있다 _문 신/ 시인, 문학평론가
이런 시는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첫째, 젊었을 때 환상을 품었던 '나'를 몇몇 소수로 특정하여 귀속시킬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젊은 시절을 거쳐온 이라면 예외 없이 삶과 꿈에 관한 판타지를 스스로 그려보았을 것이고, 자기가 그려놓은 판타지와 자기가 처해 있는 현실의 불일치를 인정해야 했을 때의 좌절과 패배감으로 서서히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둘째 이유는 절대다수의 사람이 착취와 업신여김을 경험해보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드물게 착취로부터 열외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물론 그 운이 돌변하여 불운이나 비운의 지경으로 바뀌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도 했다. 또 하나 이유는 태어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탄생시킨 구세계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구세계라는 이름과 달리 그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세계는 자가증식 형태로 재생산되며, 새로 태어난 존재는 어느 순간 구세계에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자기를 내려다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아이칭의 시는 시가 되기를 거부한다.
이러한 사실을 미리 깔아놓은 후, 내가 아이칭의 시를 읽으면서 제대로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나는 이 시에서 '반항하는 시인'의 모습에 특별히 주목했다. 아이칭은 반항할 줄 아는 시인이다. 그는 '구세계의 추악한 모든 것을 찌르"기 위해 기꺼이 강도의 친구가 되기로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주어진 무기란 고작 "털 빠진 붓"에 불과함에도 기꺼이 찌르기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시인이기 때문이다. (p. 시 174- 175 | 론 175-176)
------------------------
* 『문파 MUNPA』 2022-여름(64)호 <시인의 촉> 에서
* 문 신/ 2004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 2016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시집 『물가죽 북』『곁을 주는 일』, 동시집『바람이 눈을 빛내고 있었어』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 생애 처음 돈 벌기/ 마경덕 (0) | 2022.06.21 |
|---|---|
| 모성의 기사 · 1_기사와 댓글들/ 김효은 (0) | 2022.06.20 |
| 송아지의 노래/ 박승일 (0) | 2022.06.18 |
| 허공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김준태 (0) | 2022.06.17 |
| 무의도에서/ 박경옥 (0) | 2022.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