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지 못한 밤 외 1편
임지나
침대에 누워 밤하늘을 본다
건너편 아파트 고층은 맨홀에 담겨 있다
검정보다 검은, 더 짙은 검정 즐겁게 검정
밴타블랙*의 밤
어느 예술가가 독점한 것이라는데
이 밤은 어느 예술가에게 승인을 받았을까
누구와 잠들어 깨어났었는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 점 하나로 웅크린
숯을 지피듯 별은 빛나고
처음 보는 구멍처럼 뻥 뚫린
인간은 무한하구나 밤처럼 고통이 없었으면
어디까지 내려가고 얼마나 차가울까
모든 사람이 나 하나 바라보는 것 같은
밴타블랙 눈동자의 밤
존경하는 사람들과 같이 누워있는 것 같은 밤
멀리 묶여있는 개도 컴컴 짖는다
-전문-
* 현존하는 물질 중 가장 검은 완벽한 검정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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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돌아가신 시아버지 서류 정리하느라 어머니 인감도장 만들러 갔네 미신이든 아니든 무병장수에 복 받는 도장이라며 삼만 오천 원짜리부터 권하네 학과 거북이 새겨져 있고 용의 머리가 붙어 있는 뚜껑, 정신 없이 남편 좇아 사느라 생각 못했네 우리 아버지 도장, 어떻게 생겼더라 아득했네 그만그만한 손가락 같은 도장들을 만지네 아버지 손마디를 잡아본 게 언제던가 사 남매가 장대비처럼 들이치고 빗금이 생기고 사 남매는 손금을 팠겠네 부모님께 좋은 도장 하나 선물로 많이 한다는데, 가게 아저씨 마수걸이 걸린 내게 계속 연설했네 나는 인주같이 아버지에게 스몄다가 타인의 낙관처럼 덤덤해졌네 야무지게 인주 두 통 덤으로 흥정하고 어느 한적한 가게에서 손가락 만들지 홈 없이 매끈하고 평평하게, 마른 홍합 멸치 몇 개에 막걸릿잔 잡을 아버지 손가락 바꿔드리네 어디 호기롭게 도장 찍을 서류 한 장 없겠지만 넘기고 받은 거 없는 무한한 빈손은 아니라고, 비싸다고 비싸다고 생각하며 삼만 오천 원짜리 즉흥적 효도라 치부한 마음 도장이 완성되는 10분 동안 깎여갔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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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네가 오는 시간은 연시』에서/ 2022. 6. 13. <상상인> 펴냄
* 임지나/ 2015년『시와소금』으로 동시 & 2017년 ⟪영주일보⟫ 신춘문예로 & 2019년『시와 경계』로 등단, 동시집『머그컵 엄마』『꼬리 흔드는 아이』, 한국동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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