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비로소 꽃/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2. 6. 18. 01:57

 

    비로소 꽃

 

    정채원

 

 

  꽃은 뒤에서 봐도 꽃이고 거울 속으로 몰래 훔쳐봐도 꽃이고 비대면으로 봐도 꽃이다. 밥을 먹다 봐도 꽃이고 말다툼을 하다 봐도 꽃이고 걸레질을 하다 봐도 꽃이다.

 

  내려다봐도 지고 있고 올려다봐도 지고 있다. 코미디 쇼를 틀어 놓고도 지고 있고 수염을 깎으면서도 지고 있고 자다 깨어 새벽까지 뒤척이면서도 지고 있다. 꽃을 버리면서 꽃은 꽃이 되고 있다.

 

  우리 집 신발장 옆에 놓인 꽃은 일 년 전에도 피어 있었고 어제도 피어 있었고 오늘도 피어 있다.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꽃은 꽃이 아니다. 질 줄도 모르는 건 꽃이 아니다.

 

  나는 피었다가 기필코 지는 꽃을 사랑한다. 지는 모습을 감추지 못해 슬퍼하는 꽃을 오래 사랑한다. 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꽃을 더 오래 사랑한다. 패색이 완연한 계절, 내 안에 너는 아직도 피어 있다. 비로소 꽃이 되었다. 서로에게.

   -전문- 

 

  해설> 한 문장: 두 종류의 '꽃'이 있다. 하나는 언제 어떻게 보아도 꽃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는 꽃이고, 다른 하나는 늘 지고 있는 상태의 꽃이다. 전자가 "언제나 활짝 피어 있는 꽃"이라면 후자는 "꽃을 버리면서 꽃"이 되고 있는 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자는 항상성의 꽃이고, 후자는 유한성의 꽃이다. 항상 지고 있다는 것은 탄생 이후부터 줄곧 소멸/죽음을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생명의 유한성을 가리킨다. 시인은 두 가지 '꽃'을 대비하면서 "피었다가 기필코 지는 꽃을 사랑한다"라고 고백한다. 심지어 그는 "질 줄도 모르는 건 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시인은 꽃이 지는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바꿔서 표현하고, 그것이 마치 꽃의 능력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일 년 전에도 피어 있었고 어제도 피어 있었고 오늘도 피어 있"는 항상적 상태의 꽃은 무능력한 존재이다. 왜 그것은 '(무)능력'인가? 시인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 대신 피었다가 지는 꽃이, 피기도 전에 져 버린 꽃이 오래도록 자신의 기억 속에 남는다고 고백한다. "내 안에 너는 아직도 피어 있다. 비로소 꽃이 되었다"라는 진술처럼 꽃은 시들고 난 이후, 즉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다. 어디에? '내 안', 그러니까 시인의 기억에 살아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현상을 가리켜 "비로소 꽃이 되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인간이 대상(꽃)과 비도구적인 방식으로 관계 맺을 때 사물의 존재감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p. 시 63/ 론 120-121) (고봉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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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에서/ 2022. 6. 7. <시작> 펴냄   

  * 정채원/ 1996년 월간『문학사상』으로 등단, 작품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