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나를 막지 말아요 외 1편/ 정채원

검지 정숙자 2022. 6. 18. 02:17

 

    나를 막지 말아요 외 1편

 

    정채원

 

 

  가슴에 구멍을 뚫으면 피리가 되지

  몇 개를 막으면 노래가 되지

 

  노래에 구멍을 뚫으면 춤이 되지

  자면서도 멈출 수 없는 춤

  떼 지어 다녀도 늘 혼자인 춤

 

  구멍이 다 막히는  날

  노래도 춤도 다 막히고,

  막이 내리지

 

  다음 공연은 아직 미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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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

 

 

  쉬지 않고 내리는 빗물이 사막에 수백 개의 호수를 만든다. 우기가 끝나면 가장 깊어지는 수심을 들여다본다. 떨어져 있는 호수와 호수가 하얗게 타는 모래 밑에서 서로의 냄새를 더듬는다. 바다에서도 본 적 없는 주황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사막 호수, 석 달이 지나면 사랑은 말라 버리고 모래에 처박힌 바퀴는 점점 더 꼼짝달싹 못 할 것이고.

 

  모래바람 속으로 눈썹에 내려앉는 모래를 깜빡이며 걷고 또 걷는다. 건기 뒤에는 우기를, 우기 뒤에는 건기를 마련한 건 누굴까?

 

  그러나 건기를 지나도 또 건기, 우기를 지나도 또 우기, 그런 마을도 있다. 모두가 메말라 기억의 핏줄까지 마른 잎맥처럼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지던 마을, 혹은 젖고 젖고 푹 젖어 푸른곰팡이가 수국 꽃송이가 되다 쉰 밥덩이가 되다 수심 알 수 없는 웅덩이가 되던 마을, 모두가 제 안에 익사해 퉁퉁 불어 터지던 마을, 살아도 살아도 살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죽어도 죽어도 죽어 본 적 없는 얼굴로 분노의 고무줄을 계속 잡아당기던 마을, 의심을 풍선처럼 계속 불어 결국 터져버리던 마을, 욕망을 계속 가열해 사랑하는 이들을 다 태우고 깨진 유리창과 검은 재만 남기던 마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

 

  우기가 끝날 즈음, 도망쳐 온 사람들의 사막에 피어나는 석 달 동안의 오아시스. 짧은 천국은 서서히 말라 가고 갈라터진 바닥을 보이겠지만, 얼핏 본 주황물고기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계속 헤엄쳐 다니겠지, 다음 우기를 기다리면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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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우기가 끝나면 주황물고기』에서/ 2022. 6. 7. <시작> 펴냄   

  * 정채원/ 1996년 월간『문학사상』으로 등단, 작품집『나의 키로 건너는 강』『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일교차로 만든 집』『제 눈으로 제 등을 볼 순 없지만』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