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다시 세상을 품다 외 1편/ 홍신선

검지 정숙자 2022. 6. 15. 01:50

 

    다시 세상을 품다 외 1편

 

    홍신선

 

 

  간밤 토막잠 밀어내 놓고

  새벽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뒹굴다 보면

  끝내 분별 하나가 시오 리 밖쯤 가던 발걸음 되돌려 달려온다.

  갈 때는 갈 때고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빠르다

  (아암 그렇지 그랬었구나)

  문득 내 머리맡이 환해진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속 깊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듬고 추슬러

  아니 돌려서 생각을 자주 바꾼다.

  그럴 때마다

  때 없이 서리 묻은 세월의 언저리가

  더 시려 와도

  밤새

  멀찍이 밀쳐 두었던

  이 산골 세상을 나는 다시 품에 안을 수밖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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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근방 가재골

 

 

  그예 뒷산 너머 곤두박인 늦저녁 해가

  견인되어 끌려 나갔는지

  수습 중인 현장에는

  널려 있는 깊이 깨진 구름들에서

  뭉글뭉글 솟구치는 아픔

  생리혈처럼 얼마나 붉고 선연한가.

  마지막을 저 노을에 기대어

  붉고 환하게 서녘 하늘 끝을 태워 지고 가는 저이는 누구인가.

  이윽고 어스름 녘이 광폭의 걸개그림처럼

  건곤에 걸리고

  이 번민 저 아픔에 찔려 쏟아 낸

  한 편 또 한 편

  내 시에는 고스란히 지난 세월들이 고여 있어

  마지막 내 모니터 화면에 환히 붉게 일렁인다.

  머지않아 스무닷새 달 뜨면

  놀란 억새들 목을 길게 뽑아

  가을을 새삼 만난다는 듯 둘러볼 것이다.

  철새들이 그림자도 없이 날아가고

  그 울음소리들만이

  이 골짜기 세상의 고막 나간 귀들을 구석구석 털어 나간다.

  바람난 길고양이도 떠돌다 돌아오는

  툭 홍시 한 점 농익어 떨어지는

  상강이 며칠 뒤다.

      -전문-

 

    * 가재골: 얼마 전 내가 귀촌한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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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에서/ 2022. 5. 20. <파란> 펴냄   

  * 홍신선/ 1944 경기 화성 출생, 196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서벽당집』『겨울섬』『삶, 거듭 살아도』(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다시 고향에서』『황사 바람 속에서』『자화상을 위하여』『우연을 점찍다』『홍신선 시 전집』『마음經』(연작시집), 『삶이 옹이』『사람이 사람에게』(선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산문집『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말의 결 삶의 결』『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저서『현실과 언어』『우리 문학의 논쟁사』『상상력과 현실』『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연구』『한국시의 논리』『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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