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을 품다 외 1편
홍신선
간밤 토막잠 밀어내 놓고
새벽 내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뒹굴다 보면
끝내 분별 하나가 시오 리 밖쯤 가던 발걸음 되돌려 달려온다.
갈 때는 갈 때고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이 빠르다
(아암 그렇지 그랬었구나)
문득 내 머리맡이 환해진다.
그렇게
나이 들수록 속 깊이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다듬고 추슬러
아니 돌려서 생각을 자주 바꾼다.
그럴 때마다
때 없이 서리 묻은 세월의 언저리가
더 시려 와도
밤새
멀찍이 밀쳐 두었던
이 산골 세상을 나는 다시 품에 안을 수밖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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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근방 가재골
그예 뒷산 너머 곤두박인 늦저녁 해가
견인되어 끌려 나갔는지
수습 중인 현장에는
널려 있는 깊이 깨진 구름들에서
뭉글뭉글 솟구치는 아픔
생리혈처럼 얼마나 붉고 선연한가.
마지막을 저 노을에 기대어
붉고 환하게 서녘 하늘 끝을 태워 지고 가는 저이는 누구인가.
이윽고 어스름 녘이 광폭의 걸개그림처럼
건곤에 걸리고
이 번민 저 아픔에 찔려 쏟아 낸
한 편 또 한 편
내 시에는 고스란히 지난 세월들이 고여 있어
마지막 내 모니터 화면에 환히 붉게 일렁인다.
머지않아 스무닷새 달 뜨면
놀란 억새들 목을 길게 뽑아
가을을 새삼 만난다는 듯 둘러볼 것이다.
철새들이 그림자도 없이 날아가고
그 울음소리들만이
이 골짜기 세상의 고막 나간 귀들을 구석구석 털어 나간다.
바람난 길고양이도 떠돌다 돌아오는
툭 홍시 한 점 농익어 떨어지는
상강이 며칠 뒤다.
-전문-
* 가재골: 얼마 전 내가 귀촌한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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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에서/ 2022. 5. 20. <파란> 펴냄
* 홍신선/ 1944 경기 화성 출생, 196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서벽당집』『겨울섬』『삶, 거듭 살아도』(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다시 고향에서』『황사 바람 속에서』『자화상을 위하여』『우연을 점찍다』『홍신선 시 전집』『마음經』(연작시집), 『삶이 옹이』『사람이 사람에게』(선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산문집『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말의 결 삶의 결』『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저서『현실과 언어』『우리 문학의 논쟁사』『상상력과 현실』『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연구』『한국시의 논리』『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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