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돌도 집이 있다
홍신선
주워 모은 잡석들로 터앝 배수로 돌담을 쌓는다. 막 생긴 놈일수록 이 틈새 저 틈새에 맞춰 본다. 이렇게 저렇게지만 뜻 없이 나뒹굴던 돌멩이가 틈새를 제집인 듯 척척 개인으로 들어가 앉는 순간이 있다. 존재하는 것치고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거지. 그렇게 한번 자리 찾아 앉은 놈은 제자리에서 요지부동 끄덕도 않는다.
사람도 누구나 어디인가 제 있을 자리에 가 박혀
오 돌담처럼 견고한 칠십억 이 세상을 이룬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존재하는 것치고 쓸모없는 건 없다는 거지"라는 구절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듯, 「막돌도 집이 있다」는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 ‘두두물물 진로현신頭頭物物 眞露現身’ 같은 선어禪語들에 스민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의 참된 광휘를 되비친다. 달리 말해, ‘두두물물 화화초초頭頭物物 花花草草’, 길가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와 풀 한 포기조차도 모두가 부처이며,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을 이루고 있다는 화엄의 세계상을 아로새긴다고 하겠다.
‘화엄경華嚴經’이 ‘잡화경雜華經’이란 다른 말로 일컬어질뿐더러 '대승 경전의 꽃'으로 추앙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세심하게 되살피면, "주워 모은 잡석들", "막 생긴 놈", "나뒹굴던 돌멩이" 같은 허접한 존재들을 표상하는 이미지들이 이 시편에서 돋을새김의 필치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까닭을 단번에 직감할 수 있을 듯하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틈새를 제집인듯 척척 개인으로 들어가 앉는 순간"이란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 삼라만상 전체가 상호 의존성의 그물을 짜고 엮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무궁무진한 현상들이자, 이른바 연기법緣起法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오는 무량한 사건이자 존재임을 암시의 조각술로 현시한다. (p. 시 18/ 론 93-94) (이 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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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가을 근방 가재골』에서/ 2022. 5. 20. <파란> 펴냄
* 홍신선/ 1944 경기 화성 출생, 1965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서벽당집』『겨울섬』『삶, 거듭 살아도』(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다시 고향에서』『황사 바람 속에서』『자화상을 위하여』『우연을 점찍다』『홍신선 시 전집』『마음經』(연작시집), 『삶이 옹이』『사람이 사람에게』(선집), 『직박구리의 봄노래』, 산문집『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말의 결 삶의 결』『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저서『현실과 언어』『우리 문학의 논쟁사』『상상력과 현실』『한국 근대문학 이론의 연구』『한국시의 논리』『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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