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봄 호밀/ 차옥혜

검지 정숙자 2022. 6. 12. 01:59

 

    봄 호밀

 

    차옥혜

 

 

  봄이다

  샛바람 분다

  살았다 견뎌내었다 이겼다

 

  겨울에 눈떠 멋모르고 우쭐대다

  폭설에 덮여 얼음에 갇혀 죽음과 싸우며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는

  환희의 깊이와 높이를

  봄날에 싹터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새순이

  매화, 산수유, 수선화가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겨우내 떨며 움츠리고 얼면서도 끝내 푸른빛 잃지 않은 작은 몸이 

  신기하고 대견하며 자랑스러워

  제 이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제 어여쁨 소리죽여 노래한다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좋아

  봄날의 특권 아니냐

  스스로 다독이며 힘 모은다

 

  봄볕이 보약이다

  겨우내 못 자란 키가

  으쓱 솟는다

  하늘까지 가보자

  꿈꾸자 희망 품자

 

  부변을 둘러보니 호밀 친구들의

  상기된 눈빛 부푼 가슴

  겨울을 함께 이긴 호밀들이

  봄바람에 남풍에

  샛바람에 꽃바람에

  모두 함께 춤춘다

  봄이다 봄날이다

  호밀 만세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은 '혹독한 겨울을 통과한 자만이 느끼는 환희의 깊이와 높이'를 봄 호밀에서 발견한다. 그는 '봄날에 싹터 꽃샘추위에 벌벌 떠는 새순'이나 '매화, 수선화'가 그 환희를 헤아릴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의 호밀은 '제 이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시인은 이를 '봄날의 특권'이라 명명한다. 이렇게 봄 호밀은 소망所望의 상징이다. 소망은 희망과 어감이 비슷하나 의미는 다르다. 목표가 분명한 희망이 소망이다. 성경에서는 소망이라는 말을 쓰지 희망이라는 어휘는 쓰지 않는다. 시인의 주의 깊고 성실한 관찰은 사월 초의 호밀, 이삭 맺은 호밀을 거쳐 풋거름에 이르는 호밀로 그 생장生長의단계를 따라 이동한다. (p. 시 18-20/ 론 127) (김종회/ 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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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호밀의 노래』에서/ 2022. 5. 30. <현대시학사> 펴냄   

  * 차옥혜/ 1984년『한국문학』으로 등단, 시집『깊고 먼 그 이름』『허공에서 싹 트다』『식물 글자로 시를 쓴다』『말의 순례자』외 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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