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뼈를 위한 레퀴엠/ 이향란

검지 정숙자 2022. 6. 6. 02:26

 

    뼈를 위한 레퀴엠

 

    이향란

 

 

  갈 데까지 갔다, 라는 말을 좀

  빌려도 되겠습니까

  닳고 닳아서라든가 끝까지 가서 더 이상은, 이라는 문장을

  꺼내 써도 되겠습니까

 

  피골이 상접했다, 라고 쓴 만장이

  공중에서 개별 문장으로 흩날리는 겨울

 

  매섭게 추운 그 문장 아래 꼿꼿이 서 있다가

  한순간 성냥을 화악, 그어 버리고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도 되겠습니까

 

  찢기고, 찔리고, 터지고, 썩어 버린

  살의 투실투실한 후일담에 대해서는 정말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겁 없이 살집이 오르던 그 시절은 야위고

  뼈아픈 후회만 남았다는 말을

  툭툭 분지릅니다

 

  한 삽 두 삽 던지는 흙 속에서

  뼈가 솟구칩니다

 

  다행히 부드러운 흙의 일가라도 이룬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전문-

 

  해설> 한 문장: 고체는 공간을 차지하면서 시간마저 결박시킨다. 이집트 파라미드나 인도의 타지마할을 떠올려 보라. 고체는 무겁고, 부피가 크며, 뿌리가 박힌 고착의 상태다. 고체는 일정한 형태를 오래 유지한 채 변화를 거부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타자와 동화되거나 합일될 수도 없다. 그래서 고독하다. 고체화된 언어는 관념적이고, 상투적이며, 경직된 '이즘ism'이 되기 마련이다.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는 액체와 달리 고체는 "찢기고, 찔리고, 터지고, 썩어버린"다. "겁 없이 살집이 오르"는 부피의 팽창, 확장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영속할 것 같지만 끝내 "닳고 닳아" "부드러운 흙의 일가"로 스러진다. '뼈'는 육체의 최종 단계이자 형태를 잃은 형태, 덧없는 소멸의 기호이다. 시인이 뼈를 위한 진혼곡을 부르는 것은 뼈에 대한 연민이자 이 세계의 모든 고정된 형태들에 대한 애도인 셈이다. "시인이 스타일을 획득하면 문학적 인공물을 세우는 자가 된다"던 옥타비오 파스의 경고처럼, 이향란은 언어와 사유의 고체화를 경계한다. 특정한 형태로 시대를 장악하는 경향과 유행을 거부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형태의 한 최종 단계인 '뼈'의 고독한 슬픔을 보여줌으로써 형태를 신봉하는 집단 축제에 사이렌을 울린다. (p. 시 30-31/ 론 1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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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에서/ 2022년 5월 20일 <천년의시작>펴냄

  * 이향란/ 강원 양양 출생, 2002년 시집『안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슬픔의 속도』『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너라는 간극』『이별 모르게 안녕』(전자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