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목수/ 이현복

검지 정숙자 2022. 6. 11. 00:42

 

    목수

 

    이현복

 

 

  나무 냄새가 안채 바깥채를 덮고

  뒤란을 돌아 울타리 밖까지 넘쳤다

 

  대팻밥 톱밥이 쌓여 사시사철 뜨락이 하얗다

  아버지, 귀에 꽂힌 연필로 꽃을 그리면

  국화 문살이 되고 새를 그리면

  대웅전 처마 끝에 봉황이 날았다

 

  그 새, 날개를 펼치면 동쪽과 서쪽 하늘이 덮이고

  한 번의 날갯짓에 별나라까지 날아간다 했다

  봉황의 이야기를 듣는 날이면

  나는 봉황의 붉은 볏을 잡고 구만리를 날아다녔다

 

  내가 통나무 끝에 꽂은 핀을 잡고 있으면

  아버지는 반대쪽으로 먹통을 끌고 가 줄을 튕기셨다

  흑룡 입에서 풀려 나온 먹실이 나무 속살에 튕겨지고

  둥그런 통나무가 기둥이 되고 집이 되었다

 

  꽃무늬 문살이 팔려나가는 수만큼

  아버지의 젊은 날은 멀어져갔다

  한 생 나무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먼 길을 돌아오시던 아버지

 

  아버지가 없는 날, 흑룡이 그려진 먹통은 내 차지였다

  나는 먹통에 줄을 풀어 상상의 집을 지었다

  앞산 남근석에 먹줄을 묶고 벼랑 끝까지 당기면

  먹물이 번지듯 어둠이 내리곤 했다

 

  이제 먹통에 먹물은 말랐다

  끌 끝에 손가락이 찔려 물든 연꽃이

  대웅전 처마 끝에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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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문학』 2022-하반기(14) <미당문학이 뽑은 오늘의 시인>에서

  * 이현복/ 충북 제천 출생, 2019년 시집『누구의 웃음이 나를 살린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꽃과 밤 사이』등, 숲 해설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