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낙지 굴/ 염민숙

검지 정숙자 2022. 6. 6. 13:29

 

    낙지 굴

 

    염민숙

 

 

  암호로 쓴 딸의 일기장을 읽었다

  탈화하고 남은 매미의 껍질같이

  본 모양이 추상화된 글자다

  땅에 따라 달라지는 낙타 발자국이다

 

  아이 마음은 갯벌 낙지부럿*처럼 굴이 깊다

  다가서면 이미 다른 데로 길을 팠다

  팔을 뻗어도 장막까지 닿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온기를 따라 손을 뻗어오기도 한다

 

  갈라지는 입술에 아이의 메마른 속을

  미소를 띠면 따스함이 고이는구나

  눈이 반짝이면 길이 트이는 줄 알아들었다

 

  문 닫고 침대 아래에 지부를 둔

  외계와의 교신 끝에 딸은 제 행성으로 떠났다

  멜로디언 스타킹 앨범 크리스마스카드 일기장은

  거주지 기념물로 남기고 갔다

 

  암호 해독 키처럼 딸의 딸이 왔다

      -전문-

 

   * 부럿: 낙지구멍은 낙지가 뻘 속에서 숨을 쉬면서 불어 내놓는 물 때문에 뽀하게 솟아올라 있다. 이것을 '부럿'이라고 하는데, '부럿' 주위에는 위장을 하기 위한 구멍들이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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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인』 2021-07월(02)호 <시-움>에서

  * 염민숙/ 1960년 전남 장흥 출생, 2015년 ⟪머니투데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시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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