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물의 역 외 1편/ 이향란

검지 정숙자 2022. 6. 6. 02:57

 

    물의 역 외 1편

 

    이향란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멈추고 싶을 때가 있지요

 

  햇볕이랑 구름이랑 새의 그림자에 놀라

  나도 한번, 하면서 브레이크를 결고플 때가 있지요

 

  미끄러지듯 올라탄 가랑잎과 이야기를 나누고

  속살 켜켜이 스며드는 바람의 물보라 고백도 들어 가면서

  밤이 밤인 줄 모르게 달과 질탕 놀고픈 때가 있지요

 

  소리와 흔적이 남지 않는 곳에서

  시간마저 멈춘 자리에서

  내가 네게 깊숙이 스며들어

  뜨겁게 소용돌이치고픈 때가 있지요

 

  물비늘의 다정함도 뒤돌아보고

  닳고 닳은 지느러미도 어루만지며

  기인 머릿결을 휘날리고픈 때가 있지요

 

  비에 젖지 않는 수심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픈 때가 있지요

 

  그러다 꽝꽝 나를

  닫고픈 때가 있지요

      -전문 (p. 52-53)

 

    ------------------------------

    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물가에 사는 뮤즈는 담배를 좋아하지

  물보라를 돌돌 말아 입술 없는 입가에 갖다 대고는

  물고기처럼 늘 뻐끔거리지

 

  뮤즈는 빛이라서

  아니 어둠이라서 볼 수가 없지

  조약돌로 누워 버릴까 생각은 하겠지만

  그건 뮤즈가 아니라서

 

  시간의 등 뒤에서 뮤즈는

  뭔가의 신호를 기다리지

 

  밤의 곁을 따라 노래 부르고 춤을 추어도

  어느 곳도 가닿을 수 없지만

  뮤즈는 외로운 걸 몰라 서성대기만 하지 

  낮의 물가나 밤이 기슭을

 

  내게 어느 불면의 밤이 찾아와

  끊었던 담배를 꼬나물었을 때

  잠들지 못하는 뮤즈가 잽싸게 날아들었지

 

  타는 내 담배에 젖은 담배를 갖다 다며

  성급하게 혹혹 빨아들였지

 

  그리하여 뮤즈의 담배에 불이 붙기 시작했을 때

  뮤즈는 내가 되고

  나는 빛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를 보았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수소문해도 찾을 수없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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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에서/ 2022년 5월 20일 <천년의시작>펴냄

  * 이향란/ 강원 양양 출생, 2002년 시집『안개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슬픔의 속도』『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너라는 간극』『이별 모르게 안녕』(전자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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