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반올림/ 양균원

검지 정숙자 2022. 6. 2. 03:09

 

    반올림

 

    양균원

 

 

  큰물이 지기까지

  굴러온 것들이 굴러간 것들 자리에 나앉아 있어요

  박힌 것들보다 뽑힌 것들이 더 평화로운

  돌멩이들의 낙원이지요

  길 아닌 길

  그 마른 천을 걸으면

  싹싹한 말발굽 소리가 올라와요

  물살에 쓸려 한밭을 이룬 숱한 응집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그락, 자그락

  깨문 입술이 짧게 열렸다 닫히는

  파열음이 이어져요

  넘어지면 눕고 누우면 뒹구는 자갈들의 시간이

  날 받치고 나아가게 해요

  반쯤 무시하면서

  슬쩍 수인사라도 건네듯, 발목을 당겨요

  잠시 남은 자들도

  먼저 떠난 자들 못지않게 모퉁이가 닳았으니

  내 발길이 친족의 귀환인 줄 직감했을 터

  자잘한 것들이 둥글게 깨어나 마찰을 전율하는

  자갈, 자갈이 다정하게 다가와요

  연푸른 하늘이 땡볕에 타는 공간의 흐릿

  막막하고 은은하게 엔딩 크레딧이 증발해요

  큰물, 그 이후에서

  하얗게 달궈지는 자갈길을 걸어요

  둑까지 쓸려온 토사에는

  야생초가 자리 잡지요

  그 여름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손차양 두른 채 지켜봐요

  탁하게 넘실대던 물색이 촐랑촐랑 투명해져 가는

  그 여름이 어느 여름으로

  다시 아무 여름이나로 마구 넘치고

  다시 그렇게 말라가는 물살 가장자리에서

  돌밭을 매고 있는, 엄니

 

  모든 햇살이 당신을 가리키는 아침에서

  모든 그림자가 당신을 호위하는 저녁까지

 

   ------------------------ 

  * 『상상인』 2021-07월(02)호 <시-움>에서

  * 양균원/ 1981년《광주일보》신춘문예 &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허공에 줄을 긋다』『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집밥의 왕자』, 연구서『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욕망의 고삐를 늦추다』, 현)대진대 영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