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이병률

검지 정숙자 2022. 6. 2. 02:49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이병률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바깥 유리면이었다

  누구를 들여다보려 했을까

  혹은 무엇을 말하려다 무심결에 이마가 닿은 걸까

 

  안쪽 세상으로 밀어놓지 못한 자국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도 닦인 적이 없다

 

  거리가 어두워지면 안으로 엷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

  그때마다 이마 자국은 한 번 더 선명해진다

 

  이마에 유리자국이 찍힌 것이 아니라

  유리에 이마자국이 찍힌 것뿐인데

 

  그래도 된다면 자국은

  그 유리면이 박살이 나서 쓸모없게 될 때까지

  영원히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이마 자국 안쪽 반대편에는 영혼의 모든 일들이

  스스로를 휘젓고 있을지 몰랐다

 

  아주 깊은 밤 가끔 차량의 걸걸한 불빛들이

  이마 자국을 비추기를 마친 시각

 

  나는 그 이마에 내 이마를 대보았다

  이마를 마주대야만 안쪽의 무언가가 보일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 

  * 『상상인』 2021-07월(02)호 <시-움>에서

  * 이병률/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