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호랑나비 외 1편/ 설태수

검지 정숙자 2022. 5. 27. 03:09

 

    호랑나비 외 1편

 

    설태수

 

 

  들국화 연보라 꽃잎에 나비.

  날개 접었다 폈다 할 때 표범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네, 주황 바탕에 점박이들.

  언제쯤 나비한테 붙잡혔나.

  진작 빠져나왔을 법한데 아예 범은 벗어놓고

  얼룩얼룩한 표 표 표로 능히 지낼 만했나.

  모두를 나비한테 내주고도 서운한 게 없었나.

  광활한 벌판에서 진력으로 달려도

  임팔라 하나 잡기가 벅찼지.

  새끼들 건사하긴 더욱 힘들었지.

  아, 그런데 나비 날개에 못 이긴 척

  표 표 표 그냥 표 표 표 했을 뿐인데

  팔락 팔락에 재미도 괜찮아

  눈 녹듯 범은 녹아 버렸는지.

  이름마저 호랑나비로 전이되었네.

  그래도 호랑, 범 냄새 싹 가시진 않아

  산기슭 들국화에 넋 놓고 있었네.

  구름 아래 혼자 젖어 있었다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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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계점

 

 

  날개 길이가 2.4m나 되는 큰고니는

  수십 미터 물 위를 달려야 날 수 있다.*

 

  비행기도 임계점을 넘어야 이륙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전환되는 데에는

  한 생애가 소진된다.

  생의 길고 짦음에 상관없이

  이륙 에너지의 절대치는 같을 것.

  생이 점지됨과 동시에 주어진 임계점.

  안개 속에 있다.

  허방다리가 안 보이기도 한다.

  쾌속 질주하는 큰고니들.

  그 아래 물빛의 쏜살 광채는

  그들 시야 밖에 있다.

  이승 뜰 때에도 그럴지 모른다.

       -전문, 중앙일보 2021. 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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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빛들의 수다』에서/ 2022. 5. 16. <예술가> 펴냄   

  * 설태수/ 1954년 경남 의령 출생,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우리들의 샹그릴라』『금빛 샌드위치』『She, 그녀가 앞에 있다』『그림자를 뜯다』『말씀은 목마르다』『소리의 탑』『푸른 그늘 속으로』『열매에 기대어』, 세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