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세잔』에서 - 역동적 균형/ 설태수

검지 정숙자 2022. 5. 27. 02:25

 

    『세잔』에서   역동적 균형

 

    설태수

 

 

  영원은 순간순간에 대등하여

  현재는 낱낱이 살아 있는 영원.

  모래알 하나 그대로일 수 없는 것도

  삼라만상이 공명 속에 있기 때문.

  주황빛 바위들의 광채.

  목욕하는 나신들에 어린 하늘빛.

  그 어떤 현상에도 영원은

  총동원되어 있다.

  쌓이고 쌓이는 빛이 순간을

  태풍 눈보라가 역동적 균형을

  벗어날 수 없는 법.

  그의 터치에 걸려들면

  햇살도 층층이 얼어붙어

  영원은 지금 서늘히 메아리친다.

  그 울림에 매료되었나,

  마지막 길에는 이젤이 곁에 있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로 전통적인 미술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표현하고자 한 화가이다. 세잔은 자신이 포착한 것을 화폭 속에 옮기는 일을 "구현한다(realiser)"는 말로 표현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이 자연을 세밀하게 모사하여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였다면, 세잔은 "자연은 표면보다는 깊이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해석한 바대로 자연의 내적인 것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세잔은 자연을 뒤덮고 있는 오랜 관습과 인위적인 사유를 걷어 내기 위해 고전주의 원근법을 해체하여 여러 시점이 공존하는 다시점의 원근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퐁티가 말한 "체험된 원근법(perspective vecue)"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포착하는 '지각의 원근법'인 것이다. 세잔은 단일 시점이 아닌 다관점의 "확장된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았으며, 사물의 외관이 아닌 그 이면의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그리고자 하였다. 그러한 시도는 언제나 관습적인 앎에 대해 회의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주어진 것의 굴레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도록 하였다. 이렇듯 세잔은 19세기 회화의 기본적인 틀에 갇힌 가치들을 부정하고 단일 시점의 원근법을 해체하여 현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세잔 회화의 예술적인 역량은 구체적인 재현이 아니라 색채의 힘에 기반하고 있는 평면 추상에서 '구현(realisation)'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잔 회화의 예술 세계는 설태수 시인의 '세잔' 연작 시편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p. 시 45/ 론 230-231) (이미나/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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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빛들의 수다』에서/ 2022. 5. 16. <예술가> 펴냄   

  * 설태수/ 1954년 경남 의령 출생,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우리들의 샹그릴라』『금빛 샌드위치』『She, 그녀가 앞에 있다』『그림자를 뜯다』『말씀은 목마르다』『소리의 탑』『푸른 그늘 속으로』『열매에 기대어』, 세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