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마흔 외 1편/ 서상민

검지 정숙자 2022. 5. 29. 23:07

 

    마흔 외 1편

 

    서상민

 

 

  비 온 뒤

  보도블록에서 길 잃은 히브리어를 보았다

  모든 움직임이 빠져나간

  선홍빛 암호를 해독할 수 없었다

  발끝으로 건드려 보니 슬픔슬픔슬픔

  전신이 비비 꼬였다

  어디가 머린지

  경전인지 읽을 수 없었고

  몸을 웅크렸다 폭발시켜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주석이 달리지 않았다

  기어온 자국을 바닥이 먹어버려

  흔적이 지워졌다

  앞으로도

  독백으로도

  돌아가기는 멀어 보였다

  난해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사월이었고

  나뭇가지들이 게거품 같은 싹을 토하고 있었다

  붉은 속도로 돌아가는 태양에

  피부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순식간에 달라붙은 개미 떼가

  온몸을 까맣게 해석하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문장이

  오후 두 시의 세상을

  불 지르고 있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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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녘

 

 

  창밖 들녘에 길 하나 있네

  그 길 따라 한 사내 걸어가네

 

  들녘 끄트머리 언덕을 넘어

  그 사내 비워져 가네

 

  길이 어디로 가닿는지

  나는 알지 못하네

 

  사내의 등판 같은 들녘

  어두워지네

 

  개망초 피었다

  망설임 없이 떨어지네

 

  오늘의 하늘이

  어제의 하늘이 되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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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검은 모자에서 꺼낸 흰 나비처럼』에서/ 2022. 5. 13. <문학의전당> 펴냄   

  * 서상민/ 경기 김포 출생, 2018년『문예바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