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을 보는 사람
김기찬
그믐이던 마음이 보름 달빛이나 보자 하여 월명암에 오릅니다 한 발 앞서가던 산새도 숨이 가쁜지 호로록 쪽쪽 호로록 쪽쪽 오체투지로 오르다 쉬고 쉬었다 다시 오릅니다
삶을 견딘다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과 같겠지요 가슴에 맺힌 혈을 품고 심신을 안정시키자면 맛이 쓰고 성질이 찬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언젠가 방약합편方藥合編이 일러줬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오래도록 탕약을 달이듯 멀리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 아픈 사람이거나, 유독 상처가 많아 누구를 아프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겠지요
다혈질적인 나는 독초로 보자면 마땅히 천남성이거나 각시투구꽃의 눈빛일 텐데요 오늘만은 약으로 쓸 것 같은 달빛에 빨대를 꽂고 호로록 쪽쪽 호로록 쪽쪽 빨고 싶은 밤입니다
첩첩산중 꿈틀거리며 꼬물거리며 배어든 달빛이 성미가 따뜻하고 독성이 없는 사람 품 같아서, 병든 몸뚱이 말갛게 씻어주는 향香 같아서 그믐이던 마음이 열나흘 흐벅진 달빛이 되어
-전문-
해설> 한 문장: 표제작에서 시인은 '인고忍苦'나 '수심修心'과 같은 '울음'으로부터 연상되거나 역으로 연상할 수 있는 시절의 존재를 지워낸다. 하여, "그믐이던 마음이 보름 달빛이나 보자 하여 월명암"에 오르는 자연스러움을 향한다. 이 동기에는 억지도 격한 감정의 휘몰아침도 없다. 따라서 그의 산행길은 '오체투지'와 같은 길일지라도 힙겹거나 고난의 길로 그려지지 않는다. 나아가 스스로 '제독除毒'의 방편을 제시하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일반화하여 "멀리 달을 바라보는 사람은 지금 아픈 사람이거나, 유독 상처가 많아 누구를 아프게 하지 못하는 사람"일 거라는 '달빛'의 가르침을 제시한다. 실제 '달'은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난다는 속성 때문에 인도자이자 희생자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어쨌든 시인은 "그믐이던 마음"에서 출발했으나 '첩첩산중'에서마저 "그믐이던 마음이 열나흘 흐벅진 달빛이 되"는 체험을 했으니, 새로 맑게 씻긴 마음이 매운 시학으로 꽃피길 기대해본다. (p. 시 28-29/ 론 137) (백인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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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멀리 달을 보는 사람』에서/ 2022. 4. 18. <문학의전당> 펴냄
* 김기찬/ 전북 부안 출생,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바닷책』『피조개, 달을 물다』『채탄부 865-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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