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사소한가 외 1편/ 권용욱

검지 정숙자 2022. 5. 15. 15:16

 

    사소한가 외 1편

 

    권용욱

 

 

  지리산 발가락의 발톱에 집을 지었다

  비 그치면 무듬이들판의 구름이 몰려와

  멀리 산줄기 허리 아래를 걷우고

  섬처럼 봉우리들만 남는

  경주 고향집 앞 남산 풍경과 닮아서

  연고도 없는 곳이지만

  오래 산 듯하다

 

  이 낯선 곳을

  느지막이 왜 왔냐고들 묻는다

 

  여기 와서 가까이 보는 것이 많다

  허물 벗고 지상의 남은 며칠을 만끽하는 매미

  제 몸의 마지막 습기를

  작은 꽃잎으로 지우는 시월의 들꽃

  돌아누운 나를 피하지 않는 별

  가을이면 어느 것 하나 다툴 일 모르고

  가야 할 곳으로 떠나는 여기

 

  종이보다 

  흙에 낙서하는 날이 많다

  연필 대신 삽날의 필기체가 몸에 익다

  새들이 비록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쳐도

  읽지 않고 나뭇잎들이 덮어버려도

  쉼표든 느낌표든 몇 개쯤

  뿌리에 스며들어 봄날을 기억할 것이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었다면

  몸에 맞는 바람을 다시 만난 것도 같다

  지난밤엔 사람들 모르게 첫눈이 내려

  구겨진 세상을 잠시 펴주는데 

  텅 빈 겨울도 가끔 제구실하는 여기,

 

  나와 내 사이

  낯선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전문-

 

    * 사소한가思消閑家: 하동군 악양면 노전길 112-11의 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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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알 박힌 나무

    

    

  바람이 반대로 불고 가던 밤

  오랜 만에 친구 셋이 고향에서 만났다

  어제 깎은 뒷머리가 서늘하여

  마당 한쪽 물려놓은 무쇠 솥에 불을 피우고

  타닥거리는 잉걸 사이사이 추억담을 허물었다

  낮고 느린 말 품새가 익은 친구 왈,

  말년휴가 때 착한 일 한번 한답시고

  부모님 군불 거리 장만할 요량을 부렸다는데

  오래전부터 뒷산 비탈에 그루터기로 주저앉은

  아름드리 뽕나무를 이참에 베야지 했더란다

  양도 놀도 녹슨 동톱을 한참 밀고 당겼는데

 

  밑동 가운데쯤 문득 고얀 소음이 일고

  생니 몽그러지듯 톱날이 일그러지더란다

  맞은 편으로 톱을 썰다 다시 중간쯤

  또 톱날이 이를 악물고 찌그덕대더란다, 결국

  도끼로 쐐기 박아 밑동을 동강내어 보니

  나무속에 새까민 총알이 하나 박혀 있더란다

 

  박사학위로 군에 안 간 옆 친구 왈

  자기 동네 뒷산 나무들이 참 우람하고 멀쑥한데

  제구실 못한다고 어른들이 외면한단다

  까닭인즉 나무속에 총알들이 마구 박혀있어

  제재소는 아예 손사래 치고, 그래도 아까워

  이래저래 베어 쓰려다 톱질도 대패질도 안 먹히니 

  그냥 세월에 썩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란다

 

  오늘, 가까이 사는 지인이 카톡을 보내왔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생죽음한 아버지 때문에

  한평생 아무 쓸모없이 살아왔다고, 이제는

  더 분노할 정의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몸속에 박혀있는 총알이 썩지도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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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작곡 이전의 노래』에서/ 2022. 4. 20. <포엠포엠> 펴냄   

  * 권용욱/ 1964년 경북 경주 출생, 2016년『포엠포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