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필渴筆의 서書
오세영
오늘도,
분주하게, 한가롭게 혹은 다급하게
뒤뚱뒤뚱, 성큼성큼 두 발로 걷는 걸음,
사람들은 그것을 발자국이라 하더라만
실은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삐뚤빼뚤 맨땅에 써 내려간 문장들의
어휘들일지도 모른다.
O자 다리, X자 다리, 팔八자 다리, 11자 다리,
아니 ㅅ자 다리라 하지 않더냐.
인생이란 백지 위를 걷는 만년필,
타고 날 때 가득 채운 그 푸른 잉크가
다 할 때까지
행을 좇아 한 글자 한 글자 발걸음을 뗀다.
가도 가도 아스라한 지평선,
그 지평선을 넘는 날은 마침내
올 것인가.
절뚝절뚝 혹은 저벅저벅·······
원고지에
한 편의 소설을 쓴다.
-전문-
시인의 산문> 한 문장: 시인은 그 의식 자체를 넘어서야 합니다. 내가 있다는 의식, '나'로서 사유하고 '나'로서 느낀다는 의식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없는 나 즉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바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때 그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어떤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 적은 것이 곧 시입니다. 하이데거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존재가 무無로 환원(Deduktion)된, 어둠 속에서 홀연 지치는 일순의 찬란한 광휘光輝, 그것은 오직 어떤 특별한 언어, 달리 시 이외에는 현현시킬 수 없다고······. 이미지, 비유, 상징으로 쓰여지는 언어 말입니다. 『경전』에서도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비유에 의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 바 있습니다.(『화엄경』, 비유품」 제3장)
『화엄경의』 말씀, '자아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앞서의 가르침은 물론 생사의 도道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나는 그것을 항상 내 시작의 금과옥조로도 삼고 있습니다. (p. 시 35/ 론 91-9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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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갈필의 서』에서/ 2022. 4. 29. <서정시학> 펴냄
* 오세영/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전남의 장성, 광주, 전북의 전주 등지에서 성장. 1965~68년『현대문학』지 추천으로 등단, 시집『시간의 뗏목』『봄은 전쟁처럼』『문 열어라 하늘아』『바람의 그림자』등, 저서『한국현대시인연구』『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한국낭만주의 시 연구』『시 쓰기의 발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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