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작곡 이전의 노래/ 권용욱

검지 정숙자 2022. 5. 15. 14:41

 

    작곡 이전의 노래

 

    권용욱

 

 

  너를 사랑하기 전날로 편지를 부쳤다

  수취인불명으로 돌아온 것은 당연하다

 

  내가 사랑하기 전날까지 너는 그 집에 살았다

  내 없이도 너는 저녁밥을 먹고 노래를 불렀다

 

  내가 너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을 때

  그러니까 신발 가지런히 고인 섬돌을 괴고

 

  그 돌 아래 눌려서 다시 너의 노래를 듣고

  아니다, 다시 네 노래를 듣지 않아도 좋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전날의 그 집에서

  노래하기 전의 너는 있고 나는 없어도 좋다

 

  반송된 편지가 하늘나라우체통에 가득해도

  나는 그저 하루 전날의 너만 있으면 된다

    -전문-

 

   * 하늘나라후체통: 진도 팽목항에 있다

 

  에필로그> 한 문장: 나무가 자라면 어디가 자라야 하는가. 저 상수리나무가 도토리 밖으로 나설 때, 무엇부터 염두에 두는가. 나무가 나무라면 무엇을 가리켜 나무라 하는가. 보이지 않는 지하의 뿌리가 넓고 깊으면 나무라 하는가. 바람에 줏대 없이 흔들리고 싹을 주고 잎을 뇌물하여 빛을 구걸하는 지상의 가지가 길어지면 나무라 하는가. 밤과 낮처럼, 자존과 비굴처럼, 지평으로 엇갈린 뿌리와 가지가 도대체 한 나무인가 말이다. 지구가 흔들리지 않게 옭아매는 것은 뿌리지. 매향賣香의 꽃과 아첨의 열매가 향일성이라면, 땅을 쥐어뜯고라도 가지의 풍파를 지탱하는 뿌리야말로 진정 나무가 아니겠는가. 나무는 위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래로 깊어지는 것이라네. 그러나 이 시절에 누가 감히 땅속 나무를 인정하고 더 사랑하는가. (p. 시 81/ 론 1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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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작곡 이전의 노래』에서/ 2022. 4. 20. <포엠포엠> 펴냄   

  * 권용욱/ 1964년 경북 경주 출생, 2016년『포엠포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