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죄와 사랑/ 이현호

검지 정숙자 2022. 5. 19. 01:34

 

    죄와 사랑

 

    이현호

 

 

  오늘도 종일 기다렸습니다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만큼이나 가망 없는 기다림을

  앓고 있습니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처럼 기다림도 눈에 보이는 기관器官이라면

  벌써 나는 그것을 잘라버렸겠지요

  그래도 등껍질 밖으로 머리만을 내놓은 거북이처럼

  종일 오늘도 기다렸을 듯싶습니다만

 

  밤새 횃불처럼 켠 뜬눈으로 기다리며

  이 끝에는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곳으로 향하는 문이 있을지

  상상해봅니다, 상상하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어요

  나는 천국에 들기에는 죄가 많은 인간입니다

  사랑이 많은 죄가 묻혀 있는, 죄 많은 사랑이 썩고 있는

  묘지, 나는 그 연옥의 묘지기나 될까요

  나의 죄명과 네 이름이 적힌 묘비를, 온종일

  머리를 쓰다듬어주듯이 쓸어내리며

 

  시든 꽃을 새로 갈고, 묘비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며

  또 기다릴까요,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

  다 끝났다고 내 자신에서 수없이 속삭이면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너는 왜 죽지도 않고 내 속에 살아 있니 너는 살아서 왜 나를 죽이니

 

  횃불이 서서히 꺼져갑니다

 

  잊으려고,

  두 개의 베개를 겹쳐 베고 누워 누군가 보내온 책을 펼쳐봅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인과 함께 한마디가 적혀 있네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나는 한심하게도 목차도 읽기도 전에 울어버렸습니다

  우는 일밖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나는 눈물로 씻어야 할 죄가 많은 인간입니다

  나는 눈물로 구걸해야 할 사랑이 많은 인간입니다

  바닷속에 가라앉은 고대 도시처럼 눈물에 잠겨 익사한 사랑을 곱씹으며

  물수제비나 던집니다

  돌멩이들은 죄의 무게만큼 몇 걸음 못 가 가라앉고

 

  물속에는 내가 던진 돌들이 돌탑같이

  무덤같이 쌓입니다

  왜 사람들은 기도를 하나요 그저 돌탑에게

  그저 무덤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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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1-겨울(108)호 <이 계절의 신작시 1>에서

  * 이현호/ 2007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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