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파천 할매/ 조명제

검지 정숙자 2022. 5. 18. 02:04

 

    파천 할매

 

    조명제

 

 

  도동 어른의 사랑채에는

  혼자된 파천 할매가 거처하고 있었다

  목청 높은 도동 어른도 파천 할매에게는

  고분고분한 편이었다 파천 할매는

  도동 어른의 형수兄嫂였다 일찍이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신세의 파천 할매는 오갈 데 없이

  시동생네에 얹혀 살 수밖에 없었다

  도동 어른은 사랑방에 파천 할매를 모셨다

  마을 아이들도 가끔, 열린 문으로

  장죽을 물고 담배를 피우는 파천댁을 보면

  인사를 하고, 마음씨 좋은 할매로 여겼다

  파천 할매의 사랑채에는 으레 마을 친구 서넛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허름한 흑백 티브이를 보며 소일하였다 어느 날

  티브이에 불이 나고 말았다 합선으로 불이 난

  티브이에서는 불꽃 연기가 실감 나게 피어올랐다

  소화消火의 소동이 잦아들 즈음, 할매들이

  확신에 찬 한마디를 했다

  "일 낼네라 일 낼네라, 고래 쪼매한 통 안에서

  담배를 그리 많이 피워대니 어예 불이 안 나노!"

  그땐 드라마마다 궁하면 담배 피우는 장면으로

  메웠다 젊은 최불암 선생도 그 작은 통 안에서

  담배를 참 많이 피웠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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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온문학』 2021-가을(29)호 <특집/ 시보다 시 같은 일들>에서

  * 조명제/ 1985년『시문학』 시 천료 & 『예술계』 문학비평 부문 등단, 시집『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 비평집『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윤동주의 마음을 읽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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