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비
박영민
이 고비를 넘으면
모든 고비도 끝날 것이라는 게르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고비
씨앗들이 발아한 적 있다는 수상한 사막,
물기를 다 거둬간 태양의 이면으로
흑인 예수가 옆으로 길게 눕는다
검은 신기루!
굴절되는 순간
사다리를 삼키고 자꾸 길어지는 팔과 다리,
당신의 그림자를 본뜬 실루엣이 지금은
키 크고 싶다는 당신을 버린 채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유목민의 저녁
때로는 진짜 같기에
당신의 정지된 표정은 쉽게 피고 지고
앞서 간 말씀과
뒤따라가는 말씀의 간극
그 탄력 있는 말줄임의 풍경이
신기루를 베껴 쓸 수 없었다며 금세 시들해지면
어느 천재 화가의 눈물은 모래알 같은 것일까
진짜처럼 그려냈다는 그는 화가가 아닐까
달려오는 황사를 피할 수 없을 때
오아시스는 오그라들고
오늘 밤이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라는 심장 박동으로
오늘 밤이 고비의 또 다른 발원지를 기록해 본다
무한 복제한
내일의 당신은
다시 또 펼쳐질 희망이라고
소멸된 미지의 문장이라고
* 『문학 선』2012-가을호 <『문학 선』등단 시인들의 신작시>에서
* 박영민/ 2007년 『문학 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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