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당신의 고비/ 박영민

검지 정숙자 2012. 9. 13. 15:38

 

     당신의 고비

 

      박영민

 

 

  이 고비를 넘으면

  모든 고비도 끝날 것이라는 게르 위로

  끝없이 펼쳐지는 또 다른 고비

 

  씨앗들이 발아한 적 있다는 수상한 사막,

  물기를 다 거둬간 태양의 이면으로

  흑인 예수가 옆으로 길게 눕는다

  검은 신기루!

 

  굴절되는 순간

  사다리를 삼키고 자꾸 길어지는 팔과 다리,

  당신의 그림자를 본뜬 실루엣이 지금은

  키 크고 싶다는 당신을 버린 채

  모래 속으로 스며드는 유목민의 저녁

 

  때로는 진짜 같기에

  당신의 정지된 표정은 쉽게 피고 지고

 

 앞서 간 말씀과

 뒤따라가는 말씀의 간극

 

  그 탄력 있는 말줄임의 풍경이

  신기루를 베껴 쓸 수 없었다며 금세 시들해지면

  어느 천재 화가의 눈물은 모래알 같은 것일까

  진짜처럼 그려냈다는 그는 화가가 아닐까

  달려오는 황사를 피할 수 없을 때

  오아시스는 오그라들고

 

  오늘 밤이 마지막 고비가 될 것이라는 심장 박동으로

  오늘 밤이 고비의 또 다른 발원지를 기록해 본다

 

  무한 복제한

  내일의 당신은

  다시 또 펼쳐질 희망이라고

  소멸된 미지의 문장이라고

 

 

  * 『문학 선』2012-가을호 <『문학 선』등단 시인들의 신작시>에서

  *  박영민/ 2007년 『문학 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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