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K의 신호등/ 김제욱

검지 정숙자 2012. 9. 13. 13:45

 

 

      K의 신호등

 

        김제욱K

 

 

  교차로의 늪에 K의 두 무릎이 잠겨 있다

  신호등이 말했다던 알리바이가

  흔들리는 K에게 다가와

  그날의 순간을 진술했고

  교차로의 경적 너머로

  나는 뿌려졌다.

 

  하늘과 구름을 가득 품으며

  남모르게 분절되며 꿈틀거렸을 K.

 

  조각난 얼굴이 바닥을 메웠다.

 

  K가  짐승처럼 나의 도로에 뛰어든 이유는

  신호등이 저 탄환의 속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전력으로 흩어지는 외마디 말.

  허공을 휘감던 짙은 안개.

 

  K는 짧게 식어버리고

  나는 그 탄식으로 피안의 이름을 추적한다.

 

  신호등의 점멸은

  누구를 위한 놀이도 아니다.

 

  교차로 저편에 K의 산책길은 이미 펼쳐있고

  K의 기억을 따라

  나는 구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중이다.

 

  횡단하는 먹구름의 두께와

  시간의 벼랑이 지닌 높이가 그에겐 있어

  나는 아직도 K의 신호등으로 점멸 중이다.

 

  두 무릎이 더욱 짙게 잠긴다.

 

 

  *『시와미학』2012-가을호 <발표작>에서

  * 김제욱/ 2009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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