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2
-부르지 못하는 노래
채선
나는, 핏속에 울음을 가둔 벙어리로 태어났다.
-아직 다 울지 못한 새벽이 있거든 맘껏 울어주리-
해마다 봄은 미리 죽거나 시들해졌다.
몹쓸 병에 걸린 시절,
철 이른 꽃들 노랗게 흔들리고
계절 밖에서 떠도는 소문 같은 푸른 안개
떼 지어 강가로 몰려다녔다.
봄은 늘 안개속이거나 아수라장이었다.
싸움이 일고
설움이 일고
파탄이 일고
누군가는 피다만 꽃을 따라 떠나기도 했으나
그리 오래 술펐던 건 아니다.
꽃들은 제가 피고 진다는 걸 알까, 피었던 죄로
마른 꽃으로나마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도.
피어난 것들은 변질을 강요당하고,
변질된 것들은 하나씩 검은 색 이름을 갖는다.
백 년째 가뭄이 이어지는 국경 너머,
알록달록 짧은 희망으로 피어난 모두를 생략한 나는
이제 곧
척박한 곳으로 던져질 것이다.
지워지는 사람들, 그 앞에
오래 우는 사람은 없다.
추억이든 기억이든
까무룩 꺼져드는 춘곤증 같은 출생의 울음
다 울지 못한 기흉 다시 앓기 시작한다.
* 『문학 선』2012-가을호 <신작시>에서
* 채선/ 2003년『시사사』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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