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삐라 2/ 채선

검지 정숙자 2012. 9. 13. 15:19

 

 

     삐라 2

     -부르지 못하는 노래

 

      채선

 

 

  나는, 핏속에 울음을 가둔 벙어리로 태어났다.

  -아직 다 울지 못한 새벽이 있거든 맘껏 울어주리-

 

  해마다 봄은 미리 죽거나 시들해졌다.

  몹쓸 병에 걸린 시절,

  철 이른 꽃들 노랗게 흔들리고

  계절 밖에서 떠도는 소문 같은 푸른 안개

  떼 지어 강가로 몰려다녔다.

 

  봄은 늘 안개속이거나 아수라장이었다.

  싸움이 일고

  설움이 일고

  파탄이 일고

  누군가는 피다만 꽃을 따라 떠나기도 했으나

  그리 오래 술펐던 건 아니다.

 

  꽃들은 제가 피고 진다는 걸 알까, 피었던 죄로

  마른 꽃으로나마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도.

 

  피어난 것들은 변질을 강요당하고,

  변질된 것들은 하나씩 검은 색 이름을 갖는다.

 

  백 년째 가뭄이 이어지는 국경 너머,

  알록달록 짧은 희망으로 피어난 모두를 생략한 나는

  이제 곧

  척박한 곳으로 던져질 것이다.

 

  지워지는 사람들, 그 앞에

  오래 우는 사람은 없다.

  추억이든 기억이든

  까무룩 꺼져드는 춘곤증 같은 출생의 울음

  다 울지 못한 기흉 다시 앓기 시작한다.

 

 

  * 『문학 선』2012-가을호 <신작시>에서

  *  채선/ 2003년『시사사』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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