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지포라이터를 켜며/ 김종철

검지 정숙자 2012. 9. 14. 01:57

 

 

    지포라이터를 켜며

 

     김종철

 

 

  형이 면회를 왔다

  떡과 통닭 한 꾸러미에

  눈물 핑 돌았지만 이내 담배를 물었다

  번쩍이는 지포라이터로 불붙여 주었다

  쉬엄쉬엄 세상 소식 전하던 형은

  지포라이터를 봉화로 켜 올리며

  활활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고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은빛 날개 같은 생의 지표를

  꼬옥 쥐어주었다

 

  내 몸이 되었다

  경쾌한 소리에 맞춰

  찰칵, 당겨지는 생명의 불꽃

  그러나 부적 같은 봉화가 없어진 것은

  전함을 타고 먼바다로 나아갔을 때였다

  선실 침대 칸까지 미친 듯 찾아 헤맸지만

  단짝 허 병장이 귓속말했다

  <이 배에는 왕년의 소매치기, 구두닦이

  다 있능기랴요. 외제품인 게 문제지요>

  그날 지포라이터라는 이름으로

  나는 가장 먼저 전사했다

 

 

   *『현대시학』1012-8월호 <신작소시집>에서

   ** 김종철/ 1968년 <한국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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