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포라이터를 켜며
김종철
형이 면회를 왔다
떡과 통닭 한 꾸러미에
눈물 핑 돌았지만 이내 담배를 물었다
번쩍이는 지포라이터로 불붙여 주었다
쉬엄쉬엄 세상 소식 전하던 형은
지포라이터를 봉화로 켜 올리며
활활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고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은빛 날개 같은 생의 지표를
꼬옥 쥐어주었다
내 몸이 되었다
경쾌한 소리에 맞춰
찰칵, 당겨지는 생명의 불꽃
그러나 부적 같은 봉화가 없어진 것은
전함을 타고 먼바다로 나아갔을 때였다
선실 침대 칸까지 미친 듯 찾아 헤맸지만
단짝 허 병장이 귓속말했다
<이 배에는 왕년의 소매치기, 구두닦이
다 있능기랴요. 외제품인 게 문제지요>
그날 지포라이터라는 이름으로
나는 가장 먼저 전사했다
*『현대시학』1012-8월호 <신작소시집>에서
** 김종철/ 1968년 <한국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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