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부치며
장충열
푸른 바람에로의 이동-
눈을 번뜩이며 달려드는 더위를
힘껏 밀어낸다
묵향을 따라 주름살 펼쳐 대숲을 달린다
추상명령 같은 옛 시인의 궁서체가 눈앞에 죽창으로 꽂힌다
순간, 생각의 끝을 깨우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어릴 적, 외가 뒤란에 키 작은 대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푸른 잎새, 선명한 모양, 매끄러운 몸통에
촉감이 좋았던 기억들
유난히 좋아해서 지금도 대나무통만 보면 집어 든다
버릴 것 하나 없는,
곧은 심지의 뿌리 깊은 나무를 닮으라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을…
삶의 배경으로 만들지 못한 부끄러움이 늘 소화불량이다
보이는 것만 좋아하고
그 깊은 의미를 새겨두지 못한 어리석음이
부채살을 울린다
어제의 복잡한 일들 잠시, 쉼표를 찍어두고
살갗을 어루만지던 그 옛날의 바람결을 느낀다
화선지를 시원하게 대밭으로 만드시던 아버지의 모습
그 목소리 메아리진다.
*『미네르바』2012-가을호 <신작시>에서
* 장충열/ 1996년『문학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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