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수국에 이르다/ 홍일표

검지 정숙자 2012. 9. 13. 13:33

 

 

     수국에 이르다

 

      홍일표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

 

  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

  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

 

  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

 

  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

  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

  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햇살들이 손수건만한 경전을 펼쳐 들기도 한다

 

  땅 속에서 캐낸 태양은 먹기 좋게 식어 있다

  붉은 껍질만 잘 벗겨내면

  달지 않은 수국 한 송이 꺼내

  한 열흘 땅 위의 배고픈 그림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멀리서 온 바람이 수국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지나간다

 

 

   *『시와미학』2012-가을호 <대표시>에서

   *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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