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공갈 공화국/ 정겸

검지 정숙자 2022. 5. 18. 01:15

 

    공갈 공화국

 

    정겸

 

 

  출근길 현관 게시판에 부착된 안내문구가 지루하다

 

  코로나19시대 마스크 미착용시

  감염예방법 위반으로 과태료 10만 원입니다

  재활용과 음식물 미 분리배출 시

  재활용촉진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됩니다

  층간 소음은 이웃 간 예절입니다

  위반 시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10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금연구역에서의 흡연은 국민건강증진법 위반으로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애완동물 목줄 미착용 및 배설물을 미 수거 시

  도시공원녹지법 위반으로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입니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와 대로를 맘껏 달릴 즈음

  긴급 출동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뒷유리에 부착된 스티커

  긴급차량 미 양보 시 과태료 200만 원입니다

  사방 곳곳마다 교통안내판이 보이고

  아스팔트 바닥에 써놓은 60㎞, 50㎞, 30㎞ 이하의 글자들

  모두가 내 육신을 노리는 덫과 올가미다

 

  조심조심 겨우 회사에 도착

  또 하나의 복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내 카페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위반 시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며

  인사고과 반영이란다

 

  칡넝쿨 사이사이로 악을 꽃이 피어나며

  내 몸을 칭 칭 휘감고 있다

  안간힘으로 칡넝쿨을 질근질근 씹으며

  포박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내 살 찢기며 붉은 살점만 뚝뚝 떨어진다.

  IMF 시절 폐업 점포에서 구입한 낡은 지갑 속

  꼬깃꼬깃 숨겨 놓은 비상금마저

  빼앗아 가는 저 악랄한 넝쿨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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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사』 2021-가을(107)호. <시사사 포커스 2/ 신작시>에서

  * 정겸/ 2003년『시사사』로 등단, 시집『푸른 경전』『공무원』『궁평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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