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여는 중
최도선
햇살 눈부신 노을카페 통유리 벽에
쪽빛 등 푸른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오르다 굴러 나자빠졌다
네 발로 허공을 휘저으며 일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몸을 일으켜 햇살이 통과하는 유리의 밖을 빤히 내다보며
그 쪽으로 몸을 구부려 보지만 그 곳은 가장 가깝고도 먼 길,
세상의 길을 한 곳밖에 못 보는지 유리벽을 붙들고 사투를 다해 몸을 던진다
오르다 떨어지고 다시 오르는 딱정벌레의 한나절
한강이 물꽃을 반짝이며 노을 쪽으로 기울고
오후는 차츰 빛에 시들고 있다
벌레도 지쳤는지 잠시 숨죽은 듯 고요했다
고요가 쉬는 동안 나는 찻잔을 비웠다
잠시 후 벌레가 작은 날개를 비벼 펼치더니
핑핑 돌다 휙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자국도 없이 새 길을 열고 떠났다
길은 자기 몸 안으로 열려 있었다.
*『시와환상』2012-가을호 <신작시>에서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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