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정원의 세계/ 이승희

검지 정숙자 2022. 5. 15. 01:13

 

    정원의 세계

 

    이승희

 

 

  첨벙첨벙

  꽃이 피고

 

  드디어 나무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꽃송이 속으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쏘다녔고

  나는 물 장화를 신고 정원을 쏘다녔다

 

  해당화 그늘 속으로

  헤엄치는 날들이 많아졌고

  여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나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몰라서

  멈출 수 없는 놀이

 

  매일매일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별의 일에 대하여

  날마다 멀어지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에 대하여

  잠든 것들의 모든 기척처럼 번지는 핏방울에 대하여

 

  손을 숨길 주머니도 없이

  벗어둔 물 장화 속으로 물이 가득 차서

  배처럼 흔들리는 것을

  모퉁이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와서라고 할 수 있을까

  끝은 얼마나 아파야 제 끝을 다른 끝에게 내어줄까

 

  쓰러져도 자꾸만 떠오르는 이 세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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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편견』 2022-봄(21)호 <시편이 초청한 시인의 신작시와 대표시/ 대표시>에서

   * 이승희/ 1999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