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윤의섭_본질의 탄생(발췌)/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검지 정숙자 2022. 5. 15. 00:45

    

    다리 저는 사람

 

    김기택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전문-

 

  ▶ 본질의 탄생 | 김기택 시인의 시 세계(발췌) _윤의섭/ 시인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언어로 생각한다. 언어 없이는 우리가 아는 세계도 없다. 또 언어 이전의 본질로서의 세계(이데아 같은)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고 그것이 정말 있는지 증명해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언어로 찾아낼 수 있는 '원래 정해져 있는 세계(혹은 대상)의 본질'이란 애초에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그 어떤 것의 본질을 설명해 보라고 할 때 학습한 내용, 알려진 내용, 또는 스스로 생각해낸 내용밖엔 거슬러 가보면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자리만 있을 것이다. 본질은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보면 우리의 언어게임 속에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새롭게 탄생하는 그 무엇이다. 원래 없는 본질을 찾을 것이 아니라 탄생되고 정착되어 온 과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 본질이다.

  김기택 시인의 시에 대한 많은 평에서 '통찰력(투시력)을 통한' '대상의 본질(본원성, 진실) 포착'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시인의 근작시에서도 역시 세계(대상)의 '본질'이 만들어지고 탄생하는 것을 목도한다. 시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원래 있다고 생각하는 '(없는) 본질'이 아니라 현상학적 태도에 의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탄생한)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p. 시 23/ 론26)

  

  ---------------------

  * 『시와편견』 2022-봄(21)호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대표시/ 시세계>에서

  * 김기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늘 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껌』『갈라진다 갈라진다』『울음소리만 노나주고 개는 어디로 갔나』 외 다수 

  * 윤의섭/ 1994년『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