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송재학

검지 정숙자 2022. 5. 12. 01:21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송재학

 

 

  아침을 담는 항아리는

  천 개의 색을 모으는 중이다

  무채색 주둥이까지 포함하니까

  구부리고 번지는 밀물까지 돌과 함께 물렁해져서

  어딘가 스며들어야 하는 해안선이 되었다

 

  소년의 표정이 왔다

  하늘가에 인기척이 수런거리더니

  아침 식탁에 별자리를 펼치는 리넨

 

  꽃 사이에 꽃의 생활을 심고

  돌 속에 다시 돌을 옮긴다

  꽃은 희고 돌은 검다가

  둘이 합쳐서 가슴까지 검푸르다

 

  비거스렁이 하품과 거품이

  썰물을 부추기며

  무시로 글자를 쓰다 지운다 싶은데

  동심원이 모였다

  물의 관습이라는 결혼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기 흥건한

  계절이 아니라면 여기 오래 머물겠지만

 

  이름을 잊었기에 무엇이나 포옹하는

  이 아침의 긴 역광을

  어디 눈썹 없는 기별만 탓하랴

 

  십 년 후를 만날 때까지

  물결이 굳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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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에서/ 2022. 5. 3. <문학동네> 펴냄   

  * 송재학/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6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진흙 얼굴』『내간체內簡體를 얻다』『날짜들』『검은색』『슬프다 풀 끗혜 이슬』등, 산문집 『풍경의 비밀』『삶과 꿈의 길, 실크로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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