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양경언_돌아오지 않을 모험(발췌)/ 감자의 시 : 이기성

검지 정숙자 2022. 5. 10. 03:01

<2021, 제8회 형평문학상 수상자/ 자선대표시> 中

 

    감자의 시

 

    이기성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보다 감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는 검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등에 짊어진 것이 감자라면 좋을까, 검은 폭탄은 그의 머릿속에서 오래전부터 째깍째깍 수명을 줄여가고 있다. 그것은 곧, 폭발할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스트가 되느니 감자가 되는 건 어떨까

 

  그는 가방을 지고 걷는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건 감자가 아니고, 그의 부모는 가난했으며 말 없는 감자의 형상에 가까웠다. 우린 최소한의 예의를 원합니다, 농성장에서 팔을 치켜든 아버지의 목소리는 가늘고  연약했다. 구둣발로 툭 차면 데굴데굴 사방으로 굴러가는

 

  감자의 언어를 오늘은 가르쳐줄 테다. 폭발을 기다리는 남자가 말했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에서라면 감자는 그저 감자일 뿐. 그러나 둥글고 희고 매끄러운 감자의 언어는 어쩐지 불안하다. 째깍째깍 어디로 굴러갈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러니 차라리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은 어떨까. 정각에 쾅쾅! 두 번의 거룩한 폭발음. 남자의 검은 머리가 농성장 한복판으로 굴러온다. 울퉁불퉁 배고픈 감자의 얼굴로

   -전문, 수상시집 『동물의 자서전』(문학과지성사, 2020)

 

   * 심사위원: 송재학  송찬호  곽효환

 

 

  돌아오지 않을 모험 | 이기성의 시집 『동물의 자서전』에 부치는 글(발췌) _양경언/ 문학평론가

  "검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이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보다 감자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되뇌면서 시작했던 위의 시는 "희고 매끄러운 감자"에 잠겨있는 "가난"하고 "말 없는" "형상"을 살피는 과정을 통해 "차라리 테러리스트가 되는" 선택을 함으로써 역사적 주체가 되는 이의 "얼굴"을 인장처럼 남긴다. 둥근 감자는 생명을 잇게 해주는 작물이지만 한편으론 그 "희고 매끄러운" 모양새가 폭탄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고, 현재를 폭파시킬 수 있는 폭탄은 그 위험성으로 인해 "배고픈" "얼굴"들에겐 생존권을 쟁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하므로 이 상반된 속성이 뒤섞이는 혼돈의 순간에 기대어 시는 현재라는 시간을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해나간다. (p. 시 24/ 론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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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평문학』 2021-3호(11.26.발행) <2021. 제8회 형평문학상 이기성/ 자선대표시/ 작품론>에서

  * 이기성/ 서울 출생, 1998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불쑥 내민 손』『타일의 모든 것』『채식주의자의 식탁』『사라진 재의 아이』『동물의 자서전』, 평론집『우리, 유쾌한 사전꾼들』『백지 위의, 손』

  * 양경언/ 1985년 제주 출생, 2011년『현대문학』 문학평론 부문 등단, 지은 책『안녕을 묻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