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잘못 배달된 화물/ 장석주

검지 정숙자 2022. 5. 9. 02:46

 

    잘못 배달된 화물

 

    장석주

 

 

  때때로 인생이란 잘못 배달된 화물

  몸이란 봉인된 화물

 

  내 몸 속에 펼쳐지지 않은 한 권의 책

  내 몸 속에 알 낳은 비둘기 암컷 한 마리

  내 몸 속에 종유석이 자라는 동굴

  내 몸 속에 날개 달린 뱀 쌍둥이

  내 몸 속에 눈이 퇴화한 동굴 박쥐 떼

 

  태어나자마자 늑대 새끼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고

  말을 배워 앵무새처럼 종알거렸고

  몸속에 온통 독한 회의와 의문들이

  나쁜 암종처럼 출렁거리는 청춘이 왔을 때

  나는 비에 젖어 헤매 다녔다

  때로 운 나쁜 화물들은

  비에 젖은 채 배달되는 법이다

 

  꽃피어나지 못한 채

  나는 쓴다

  돌에 문자를 새겨 넣듯 고통으로 쓴다

  인생이란 무거운 책을

  생의 낱장마다 질척거리는 추억들을 새기는 것이다

  이것이, 고작 이것이

  내게 배달된 화물이란 말인가?

 

  어느 겨울날 아침

  내게 배달된 화물은 크고 무거웠다

  연약한 팔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화물을 옮기며

  불현듯 깨닫는다

  잘못 배달되는 화물도 의외로 많은 법이다

    - 시집 『크고 헐렁한 바지』(문학과지성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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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편견』 2021-가을(19)호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표지인물 특집_장석주 대표시>에서

   * 장석주/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몽해항로』『오랫동안』『일요일과 나쁜 날씨』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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