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8회 형평지역문학상 수상자/ 자선대표시> 中
울음의 두께
이서린
아직 태어나지 못한 울음이 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이 검고 어두운 바람 소리로 창을 닫아도 커튼을 내려도 사방에서 밀고 들어와 몸을 빨아들이는 울음이 있다
여덟 살의 머리 위로 해는 넘어가고 사람을 삼킨 기차는 길게 울었다 밤길을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기어이 대문에 걸려 흔들리던 조등의 불빛, 각혈 자국 선명한 수돗가에 빨다 만 옷가지가 흩어졌었다 치자꽃 향기 울컥 몰려오던 밤의 교정에서 기어이 귀신으로 한번 보았던 사람, 핏물 어린 입술 깨물며 술잔을 치고 무덤에서 불렀던 이름도 있다 굽은 골목 더듬더듬 손전등도 없이 훌쩍이며 헤어진 길을 되짚어간 시간은 아직 거기 있을까, 세상의 난간에서 펄럭이다 펄럭이다 찢어진 깃발은
그 밤마다 잠들지 못한 짐승이 있다
어쩌면 차마 눈 감지 못한 전생의 울음
밤은 곳곳에 늪을 만들어 푹푹 발이 빠지고 백 년 넘은 나무가 안개 속에서 운다
세상의 끝을 건너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울음의 두께
나는 이름 하나를 또 보탠다
-전문, 수상시집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파란, 2020)
* 심사위원: 이성모 김남호
▶ 애수哀愁와 애틋함의 풍경 | 이서린 작품론(발췌) _김문주/ 문학평론가, 시인
이서린의 시가 그리는 생명력과 관능은 불안과 상실의 맞은편에 속한 짝패의 정념으로서, 존재를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이 두 정념이 함께 어른거린다. 그녀의 시에서 느껴지는 애틋함은 아마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생의 고통, 견인의 정념을 자양으로 하고 있는 시편들과 생명-존재를 향한 열렬한 환대를 보여주는 시편들, 이른바 낮의 시와 밤의 시가 동숙同宿하고 있는 이서린의 시는 그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격차로 인해 묘한 슬픔을 빚어낸다. 애틋한 슬픔, 그 슬픔이 제 몸을 드러냈으니 그녀의 시는 이제 어디도 행로行路를 열어갈 것인지. (p. 시 82-83/ 론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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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평문학』 2021-3호(11.26.발행) <2021. 제8회 형평지역문학상 이서린/ 자선대표시/ 작품론>에서
* 이서린/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저녁의 내부』『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 김문주/ 2001년 ⟪서울신문⟫으로 평론 부문 & 2007년 ⟪불교신문⟫으로 시 부문 등단, 저서『낯섦과 환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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