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강신애
지나치기만 하고 들어가 보진 못했던 곳
성당 계단 앞에서 만나!
약속은 벚꽃처럼 하르르 져버렸죠
망각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렸죠
유리 봉헌함에 아른아른 개나리 불꽃들
나도 하얀 초 하나 밝혀
불신의 초승달 마음을 그을리고 싶군요
성모께 빌어야 할 소망 따윈 없어요
식당에서 봄나물에
밥 비벼먹고 나오는 사람들의 기도는
참기름처럼 고소하게 하늘에 가닿았을까요
공업용 원단 두 벌로 수십 년을 살고 가신
수녀님들 허름한 옷이
베개와 기도방석으로 부활하여 전시 중인데요
빈자의 사태와 허기 야물게 여미던
똑딱이 단추까지 그대로
시간의 보푸라기를 달고 형해가 되었어요
거기 가만히 머리를 묻으면
생각의 벼린 날이 슥슥 닳아지겠죠
성당 계단에 앉아보고 싶은 날이 있지요
멀리 뒤척이던 걸음들 불러 모으고
기약 잃은 생각을 매만지며
그을린 천사처럼 무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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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평문학』 2021-3호(11.26.발행) <형평문단 1>에서
* 강신애/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붍는 기린』『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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