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숨죽여 우는 사람/ 최정란

검지 정숙자 2022. 5. 7. 01:25

 

    숨죽여 우는 사람

 

    최정란

 

 

  어딘가 닿겠지요 닿지 않으면 어때요 자갈길, 흙길, 모랫길, 풀밭 길, 길 위의 시간이 길어요 좁은 길, 불면을 부르는 길, 슬픈 일이 눈을 가득 채우는 길, 작은 골목과 거리와 바닷길, 산길, 들길을 오래 걸어요 우울과 명랑이 뒤섞인 길을 걸어요 슬픈 일은 일기에 숨기고 기쁜 일만 겉으로 꺼내 놓아요 일찍 철든 유쾌한 사람으로 비친다면, 그건 순전히 슬픔과 우울을 빨아먹은 언어 덕분이지요 눈물이 우리 삶을 고귀하게 만든다는 말일까요 떨어진 눈물자국은 왕관 모양이고요 시인은 우는 사람, 다시 우는 사람, 혼자 통곡하는 사람, 누군가 들을까 숨죽여 우는 사람일까요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작품은 온전히 상징계로 떠밀려온 존재의 비애를 잘 그리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수많은 종류의 "길"들은 "우울과 명랑"의 이중 언어가 유랑하는 공간이다. 상징계는 "명랑"의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소녀-언어, 사라진 것 같은 먼 고향의 언어를 버리지 않는다. 슬픔-언어, 우울-언어의 세계에서 소녀-언어, 명랑-언어는 사라진 유토피아이다. 이 시의 화자가 "우는 사람" 혹은 "통곡하는 사람"인 이유는 고향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우울을 빨아먹은 언어"는 가짜 존재, "일찍 철든 유쾌한 사람"을 만든다. 화자는 차라리 "통곡함으로써 철들지 않기를 원한다. 소녀-언어를 버리지 못한 자만이 상징계에서 "통곡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최정란의 시에는 이렇게 "우울과 명랑이 뒤섞"여 있다. "명랑"은 그녀의 시를 경쾌하게 만들고, "우울"은 그녀의 시를 깊게 만든다. 그녀의 시들은 "우울"의 언덕에서 "명랑"을 그리워하고, "명랑"의 풀밭에서 "우울"을 감지한다. (p. 시 160/ 론 174-175)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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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독거소녀 삐삐』에서/ 2022. 5. 3. <상상인> 펴냄   

  *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2003년 《국제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장미키스』『사슴목발애인』『입술거울』『여우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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