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손가락들 외 1편/ 안차애

검지 정숙자 2022. 4. 26. 01:32

 

    손가락들 외 1편

 

    안차애

 

 

  심해어의 등지느러미에서 바흐의 평균율 소리가 난다

  푸른 매의 날개에 물결의 지문이 돋고,

 

  과학자 칼 짐머는 손을 날개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

  날개를 지느러미라고 불러도 된다고,

  한다

 

  박쥐가 서른두 개의 손가락으로 검은 하늘을 펼치면

  공동의 기억들이 쏟아질까

  손가락이 너무 많아 쏟아지는 검정을 놓칠까

 

  당신의 허리띠를 꽉 잡으려고 손가락들을, 뚝뚝

  분질렀던 기억이 있는 거 같다

  손가락 끝의 촉수가

  눈알보다 붉어진 러브 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박차고 날아오르거나

  밀치며 나아가거나

  닥치고, 꼭 집어 입 안에 밀어 넣는 건

  같은 부류의 손가락질

 

  우리가 없는 세력을 늘리는 방식이다

 

  태초처럼

  사라진 당신이 손가락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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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남편의 처삼촌을 위한 조사弔辭

 

 

  그의 죽음이 철학적이진 않았어요. 평생의 밥은 철학으로 먹었지만. 그의 밥인 철학이 크지는 않았어요. 큰 것이 붉은 것이 아니듯이 그의 하이데거와 야스퍼스가 우산이나 날개는 아니었어요. 표지판이나 볼록렌즈는 더더욱 아니어서 그는 두꺼운 근시의 안경을 쓰고 오래 대학을 다녔어요.

 

  오목한 세상들이 꼭 둥근 것은 아니어서 사월혁명의 동지들이 구부정한 물음표의 얼굴로 오래 그의 연구실에 찾아오곤 했어요. 시계의 바늘이 동그라미를 따라 돈다고 시간의 파고가 줄어들지는 않아서 왼쪽이나 오른쪽이 수시로 그를 출렁거렸어요. 실존과 통증의 불연속적 틈 사이로 키우던 손녀딸의 접시 치마가 팽글팽글 돌았지요

 

  '야야, 야채주스 그만 멕이고 나 좀 살려 봐라' 입에서 구름 토끼 한 마리 뱉어 내고 '얘 잡아 봐라'고 하듯,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가 호스피스 병동 사이로 떠다녀요. 그 사이로 시골 초등학교 선생 일을 놓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청년의 문사철文史哲이 타조처럼 달려가요. 달린다고 지구본을 돌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의 색인표와 지문 사이로 잠시 눈물 같은 것이 번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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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에서/ 2022. 4. 3. <천년의시작> 펴냄   

  * 안차애/ 1960년 부산 출생, 2002년 《부산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불꽃나무 한 그루』『치명적 그늘』, 교육도서『시인이 되는 11가지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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