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처음 알았다 외 1편
한윤희
화가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픈 건지
굵은 밧줄 하나에 꽃을 매달고
몸 길이만 한 붓으로 밥을 그린다
누가 당신에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묻는다면 하는 사이
덜컥,
빈 밧줄만 시계추처럼 흔들거린다
흔들,
현기증 날 만큼 기다란 붓 들고
벽 안으로 스며들었나
사십 층 아파트 벽엔 눈물 한 송이 모란처럼 붉다
-전문-
------------------------------
저 뼈들과 우리 사이
-해골사원*
막이 내린 지 이미 수 세기, 다시 연극이 시작되고 있다
무대미술처럼
살을 발라내고 혼을 발라낸 사백여 수도사들의 유골
서고의 고서처럼 쌓여있다
맑은 물만 담아내려 했던 손가락, 뼈 마디마디
꽃인 양 상드리아인 양 섬찟해
이십일 세기 디지털 벽과 천장은 탐미주의자처럼 태연하기만 한데
저 뼈들, 쉰 목소리로 발목 잡는다
움츠러든 눈동자들 뒤꿈치 들고 숨죽이며 굴러간다
죄진 것 없는 것 같은데 털 부츠 신고 체크무늬 목도리 둘러멘 생이 왠지 부끄러워
저 수의같이 하얀 회벽에 박힌 것이 마치 우리 때문인 것 같아서
죄를 다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한 것 같아서
-전문-
* 로마의 베네토 거리에 있는 사원.
---------------------------
* 시집 『뜨거워지는 사각 침묵』에서/ 2022. 4. 15. <코드미디어> 펴냄
* 한윤희/ 서울 출생, 2005년『문학시대』로 등단, 시집『물크러질 듯 물컹한』, 공저『숨비소리』『열한 개의 페르소나』『문파 대표 시선』외 다수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맑음 외 1편/ 최정란 (0) | 2022.05.07 |
|---|---|
| 숨죽여 우는 사람/ 최정란 (0) | 2022.05.07 |
| 카키색/ 한윤희 (0) | 2022.04.30 |
| 손가락들 외 1편/ 안차애 (0) | 2022.04.26 |
| -슥/ 안차애 (0) | 2022.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