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그때 처음 알았다 외 1편/ 한윤희

검지 정숙자 2022. 4. 30. 02:20

 

    그때 처음 알았다 외 1편

 

    한윤희

 

 

  화가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픈 건지

 

  굵은 밧줄 하나에 꽃을 매달고

  몸 길이만 한 붓으로 밥을 그린다

 

  누가 당신에게 왜 그림을 그리냐고 묻는다면 하는 사이

 

  덜컥,

 

  빈 밧줄만 시계추처럼 흔들거린다

 

  흔들,

 

  현기증 날 만큼 기다란 붓 들고

 

  벽 안으로 스며들었나

 

  사십 층 아파트 벽엔 눈물 한 송이 모란처럼 붉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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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뼈들과 우리 사이

     -해골사원*

 

 

  막이 내린 지 이미 수 세기, 다시 연극이 시작되고 있다

 

  무대미술처럼

  살을 발라내고 혼을 발라낸 사백여 수도사들의 유골

  서고의 고서처럼 쌓여있다

 

  맑은 물만 담아내려 했던 손가락, 뼈 마디마디

  꽃인 양 상드리아인 양 섬찟해

 

  이십일 세기 디지털 벽과 천장은 탐미주의자처럼 태연하기만 한데

  저 뼈들, 쉰 목소리로 발목 잡는다

 

  움츠러든 눈동자들 뒤꿈치 들고 숨죽이며 굴러간다

  죄진 것 없는 것 같은데 털 부츠 신고 체크무늬 목도리 둘러멘 생이 왠지 부끄러워

  저 수의같이 하얀 회벽에 박힌 것이 마치 우리 때문인 것 같아서

  죄를 다 짊어지고 우리를 대신한 것 같아서

     -전문-

 

   * 로마의 베네토 거리에 있는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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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뜨거워지는 사각 침묵』에서/ 2022. 4. 15. <코드미디어> 펴냄   

  * 한윤희/ 서울 출생, 2005년『문학시대』로 등단, 시집『물크러질 듯 물컹한』, 공저『숨비소리』『열한 개의 페르소나』『문파 대표 시선』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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