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호박밭의 미학/ 정영선

검지 정숙자 2022. 5. 4. 02:01

 

    호박밭의 미학

 

    정영선

 

 

  하늘의 광활한 페이지다

  샌디에고 호박밭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수천의 금빛 호박들이 그 페이지 안에서 뒹군다, 축제다

  햇빛은 과격해지다 유순해지다, 과격해지기도

 

  늦게 도착한 가을은 호박 하나씩 들어

  아름다움의 무게를 잰다

 

  크기 색깔 용도 흠집 잘 생긴 대로

  층화, 배치될 호박들

 

  이름 대신 호박이라 불렸던 일 생각난다

  그렇게 고정관념은 만들어진다

  호박에서 도망치고 호박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길었다

 

  가을은 판결을 내린다

  크건 작건, 삐뚤어졌건 호박 아름다움의 무게는 똑 같다고 땅땅

  여름을 달린 성실의 무게도 같다고 땅땅

 

  천의 시간을 달려 할로윈 데이에 집중한

  사건이 되는 호박도 섞여 있지만

 

  가을은 죽음 당의정을 계량하느라

  이미 저울을 들었다는 시간에 전작권을 넘기고

  또 다른 가을로 출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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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지션』 2022-봄(37)호 <POSITION 4/ 신작시> 에서

  * 정영선/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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