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밭의 미학
정영선
하늘의 광활한 페이지다
샌디에고 호박밭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수천의 금빛 호박들이 그 페이지 안에서 뒹군다, 축제다
햇빛은 과격해지다 유순해지다, 과격해지기도
늦게 도착한 가을은 호박 하나씩 들어
아름다움의 무게를 잰다
크기 색깔 용도 흠집 잘 생긴 대로
층화, 배치될 호박들
이름 대신 호박이라 불렸던 일 생각난다
그렇게 고정관념은 만들어진다
호박에서 도망치고 호박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길었다
가을은 판결을 내린다
크건 작건, 삐뚤어졌건 호박 아름다움의 무게는 똑 같다고 땅땅
여름을 달린 성실의 무게도 같다고 땅땅
천의 시간을 달려 할로윈 데이에 집중한
사건이 되는 호박도 섞여 있지만
가을은 죽음 당의정을 계량하느라
이미 저울을 들었다는 시간에 전작권을 넘기고
또 다른 가을로 출발한다고
----------------------------
* 『포지션』 2022-봄(37)호 <POSITION 4/ 신작시> 에서
* 정영선/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은 곳』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뻐꾸기/ 문효치 (0) | 2022.05.05 |
|---|---|
| 숭고한 일/ 피재현 (0) | 2022.05.04 |
| 등/ 이홍섭 (0) | 2022.05.04 |
| 기록자학교/ 이학성 (0) | 2022.05.04 |
| 하루치의 나/ 신용목 (0) | 2022.05.03 |